한국일보

[여성의 창] 여자라는 이유로

2016-06-07 (화) 03:13:45 남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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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며칠전 페이스북 외국인 친구 한명이 공유한 이야기가 생각난다. 남의 일 같지 않은 그 이야기가 불쑥 떠올라 잠시 일을 멈추고 여러 갈래의 생각들을 하게 된다. 그 이야기는 그 친구 지인인 쏘냐라는 사람이 직접 경험한 이야기다.

어느날 쏘냐는 여자 친구 두명과 함께 모처럼 수다 떨며 여자들만의 시간을 갖기 위해 친구들과 모여서 음식점에 가게 됐다. 음식점에서 음식을 주문하고 기다리며 이야기를 나누는데 갑자기 놀란 얼굴로 앞에 앉은 친구 모니카가 쏘냐 뒷 테이블에 앉아 있는 남자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쏘냐가 왜그러냐고 묻자, 모니카는 나지막하게 대답했다. 그 남자가 같이 동행한 여자가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에 음료수에 무슨 약을 타는 걸 봤다는 거였다. 깜짝 놀란 쏘냐와 또 다른 친구 말라는 순간 당황스러워 어찌할 바를 모르다 쏘냐는화장실로 가서 그 남자와 동행한 여자에게 자초지종을 이야기했다.

더 황당한 것은 그 남자가 처음 만난 데이트 상대가 아니라 오랫동안 알았던 그 여자의 친한 친구였다는 거였다. 그 여자는 반신반의 하며 자리로 돌아갔고, 쏘냐의 친구 말라는 웨이터에게 이야기했다. 웨이터는 확실한 물증이 없는 상태에서 쫒아 낼 수도 없어 그 여자에게 다른 음료수를 주문하게 유도하여 자연스럽게 못마시도록 하며 그 상황을 모면했다. 그러는 사이에 웨이터에게 이야기를 들은 매니저는 CCTV로 그 남자의 행동을 확인하고 경찰에 신고 하여 결국 경찰이 와서 그 남자를 잡아감으로써 그 위험한 상황은 끝났다. 그런데 쏘냐와 그 친구들을 더 놀라게 한 것은 그후 주위의 여자손님들의 반응이였다.다들 저마다 비슷한 경험을 한 여자들이 합해서 10명도 훌쩍 넘었다. 그들은 모두 쏘냐와 그 친구들이 영웅이라며 대신 고마워했다.

이 이야기가 시사하는 건 세계 어디에서나 여성이란 존재는 존중돼야 할 한 인격체가 아닌 성적인 노리개로 치부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는 거다. 쏘냐와 그 친구들을 더 충격 속에 빠지게 한 그 음식점 여자 손님들의 반응은 황당하기보다는 가슴 아프다. 더 나아가 이 21세기에 아직도 여자라는 이유로 이런 위험에 노출되어야 하는 이 현실에 화가 나기까지 한다. 사회 전반에 여러 형태로 뿌리박혀 있는 여성 비하적인 인식이 먼저 뿌리째 뽑혀지지 않는 이상,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이 세상의 반을 채우는 여성들은 또 하루 하루 위험을 감수해야만 할 것이다.

<남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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