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터 홈즈'(감독 빌 컨던)의 셜록 홈스(이언 맥켈런)는 베네딕트 컴버배치나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가 연기한 홈스와 다르다. 홈스는 93세다. 몸은 쇠약할대로 쇠약해져 지팡이가 없으면 걷기 힘들고, 왕년의 추리력이 아예 사라진 건 아니지만 기억력은 급속도로 감퇴 중이다. 유일한 친구였던 왓슨도, 형 마이크로프트도 죽었다. 홈스는 이미 30년 전에 은퇴했고, 베이커가 221B 번지에서도 오래전에 떠났다. 이제 홈스는 평범한 시골 노인이다.
물론 ‘미스터 홈즈'는 영화여서, ‘마치 영화처럼' 늙은 홈스의 나이를 초월한 활약상을 다룰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빌 컨던 감독은 무리하지 않는다. 그는 홈스의 현재 상황에 맞는 이야기를 하는데, 그것은 역시 삶을 마감하는 나이에 들어선 홈스가 자신의 인생을, 그리고 그 가운데 자신이 저질렀던 실수를 되짚어 보는 것이다. 추리물을 기대한 일부 관객은 실망하겠지만, 이 영화는 셜록 홈스 이야기를 마무리하는 데 매우 적절한 노인 홈스의 진지한 참회록이자 반성문이다.
탁월한 기억력을 가졌던 홈스가 아무리 떠올리려고 해도 도저히 기억나지 않는 사건이 하나 있다. 홈스에게 이 사건은 30년 전 갑작스레 이뤄진 자신의 은퇴와 관련이 있는 듯해서 중요해 보인다. 홈스는 고향 집 가정부 먼로 부인의 아들 로저와 함께 대화하며 이 사건의 진실에 조금씩 접근해 간다. 사건이 다시 미궁에 빠질 때즈음, 홈스의 양봉장에서 일하던 로저는 벌에 심하게 쏘여 사경을 헤매게 된다.
‘미스터 홈즈'에서 가장 돋보이는 건 서로 다른 세 가지 이야기를 동시에 진행하면서 하나의 결론에 다다르는 매끄러운 연출력이다. 컨던 감독은 홈스의 고향 생활, 은퇴 전 마지막 사건에 대한 추리, 홈스의 일본 에피소드를 교직(交織)해 가며 ‘홈스의 참회'라는 하나의 이야기에 도달하는 데 성공한다. 영화의 결론은 새로울 게 없지만, 이 삼중 구조를 통해 영화는 지루함을 피하고 관객이 영화에 끝까지 집중할 수 있게 한다.
특기해야 할 부분은 컨던 감독의 조바심 내지 않는 태도다. 우리는 인간의 참회나 반성을 이야기하는 숱한 영화들에서 관객의 감동을 끌어내기 위해 극적 장치를 어떻게 남발하는지 봐왔다. 컨던 감독은 그 대신, 홈스의 대사와 행동을 러닝타임 동안 꾸준히 축적해 관객이 그의 깨달음에 자연스럽게 스며들게 한다. 주제에 접근하는 컨던 감독의 이러한 진솔한 자세는, ‘미스터 홈즈'의 결론이 아무리 상투적인 것이라고 해도, 결국 관객이 감동해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미스터 홈즈'는 영국의 명배우 이언 매켈런이 연기하는 홈스를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기회이기도 하다. 베네딕트 컴버배치는 홈스를 히스테릭한 소시오패스로,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가 이 명탐정을 명민하고 유쾌한 액션스타로 재창조했다. 매켈런은 홈스를 기품있고 우아한 신사로 그려낸다. 이 노배우는 눈빛과 자세만으로 은퇴 전 홈스와 은퇴 후 홈스를 구현하기도 한다.
코난 도일의 ‘셜록 홈즈' 시리즈는 홈스를 종종 ‘추리 기계'로 명명한다. 물론 ‘기계'(machine)라는 단어는 당시 시대상을 고려했을 때 나쁜 표현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좋은 뜻이었다. 하지만 관계 맺기를 포기하다시피 하고 마약에 절어 사는 홈스를 나쁜 의미의 기계로 표현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이렇듯 사건만 이해하며 살던 기계적 인간이 인간을 이해하는 인간다운 인간으로 벗어나는 이야기, 그게 ‘미스터 홈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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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정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