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인간 명령만 따라야 할 ‘보안 로봇’, 어느 날 자율성이 생긴다면?

2025-08-08 (금) 12:00:00 라제기 영화전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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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애플TV+ ‘머더봇 다이어리’

▶ 드라마로 세상 배운 로봇

인간 명령만 따라야 할 ‘보안 로봇’, 어느 날 자율성이 생긴다면?

로봇이 자기 스스로의 정체성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감춰야 살아남는다. 그렇다고 감출 수 있는 게 아니다. [애플TV플러스 제공]

로봇이 있다. 전투 능력이 빼어나 인간을 보호하는 용도로 주로 쓰인다. 명칭은 ‘보안 로봇’. 하지만 회사 지시에 따라 치안 유지 업무에 투입될 수 있다. 전투 모드 프로그램을 설치하면 언제든 사람을 살상할 수 있다. 이들은 ‘머더봇’이라 불린다.

오래전 머더봇으로 활동하다 보안 로봇으로 쓰이고 있는 한 로봇(알렉산더 스카스가드)이 어느 날 스스로에 대한 해킹에 성공한다. 프로그램 통제에 따르지 않고 인간처럼 자율적으로 행동할 수 있다. 이 사실이 밝혀지면 바로 폐기처분된다. 로봇은 비밀을 지키면서 자신만의 삶을 살아가야 한다. 그는 회사 명에 따라 어느 혹성 탐사에 나선 일행의 안전을 돕게 된다.

탐사 일행은 특이하다. 히피들이 공동체를 만든 행성에서 왔다. 상하관계가 불분명하고 모두가 자유분방하다. 지도자 역할을 하는 멘사(노마 드메즈웨니)가 일행들을 지휘하나 절대 권력을 휘두르지 않는다. 일행들의 의견을 반영해 의사결정을 한다. 로봇이 보기에는 오합지졸 같은 사람들이다.


멘사 일행이 찾은 행성에서는 예상치 못했던 일들이 벌어진다. 거대 괴물이 나타나 갑자기 생명을 위협하거나 거주지로 예약한 곳에서는 로봇이 공격을 해 온다. 일행의 안전을 담당한 로봇이 나서서 위험을 제거한다. 하지만 일행은 로봇을 조금씩 의심하게 된다. 여느 로봇과 달리 자아를 가지고 있다는 게 분명해져서다. 로봇은 자신을 계속 감추면서 임무를 수행해야 하는 상황을 마주한다.

탐사 일행을 돕는 로봇은 독특하다. 해킹으로 인간 같은 정체성을 확보했으나 아이 같은 존재다. 그는 드라마 마니아다. 인간과 세상에 대한 모든 일은 드라마로 배웠다. 난처한 상황이 되거나 뭔가 창의적인 말이 필요할 때 드라마 대사를 인용한다.

탐사 일행과 로봇 사이에 의심과 신뢰가 오간다. 일행 중 누군가는 통제를 벗어난 로봇을 경계하고, 지도자 멘사 같은 이는 로봇의 인간적인 면모에 주목한다. 로봇은 둘 다 반갑지 않다. 자신의 실체가 드러났다는 판단에서다. 그는 위기에서 일행을 도운 후에도 여전히 의심받는 상황에 환멸을 느끼나 쉬 떠나지 못한다.

살인이 가능한 로봇과 인간의 사연을 다룬 이 드라마는 서스펜스보다 웃음에 방점을 찍는다. 자아를 확보한 로봇의 엉뚱한 생각과 행동, 그런 로봇을 미워하거나 애정하는 사람들의 행태가 온기 스민 미소를 종종 만들어낸다.

<라제기 영화전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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