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쾌하고 난해하다.’“최고의 영화다” 영화‘곡성’(감독 나홍진)을 둘러싼 관객의 반응은 극과 극이다. 개봉 전 '곡성' 측 관계자들도 영화의 특성상 이번 작품이 호불호가 갈릴 것으로 예상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언론 시사회(5월3일) 직후 평단의 반응이 만장일치에 가까웠기 때문이다.‘걸작’ 또는‘이전 한국영화계에서 찾아볼 수 없던 작품’이라는 평가가 줄을 이었다. 무엇이 이런 차이를 만들어낸 걸까. 나홍진 감독의 이야기를 들어보지 않을 수 없다.
'곡성'에 대한 나 감독의 생각을 듣기에 약 50분간 진행된 인터뷰는 너무 짧았다. 사족은 모두 빼고, 이 영화의 시작에 대해 집중적으로 물었다.‘나홍진은 도대체 왜 이 영화를 만들었는가’‘이 영화는 어떻게 시작하게 된 작품인가.’
-언론 시사후 영화에 대한 반응이 폭발적이었다.
“음…, 이 평가가 일반 관객의 평가와 어떤 다른 차이를 만들어낼지, 이제 이런 게 궁금하다. 물론 기분은 엄청 좋았다.”
-개봉 직전인데 긴장감이 커 보이지는 않는다.
“아주 많이 긴장된다. 이 영화가 독창적인 작품이라는 평가가 있다. 그 의미가 무엇이겠나. 이런 영화가 관객과 어떤 소통을 했는지 보여주는 전례가 없다는 말이다. 관객들이 '곡성'을 보고 어떤 말을 할까, 이런 게 긴장되는 것이다."
-아직 개봉 전이지만, 어떤 평가가 기억에 남나.
“언론 시사회가 끝나고, 간담회가 끝날 때까지 이 영화가 어떤 평가를 받았는지 알지 못했다. 기자들의 리액션도 크지 않았고, 간담회에서 질문할 때도 다들 무표정하지 않았나. 그런데 간담회 끝나고 누군가가 ‘그 평가'를 딱 보여준 거다.
이동진 평론가가 준 별 다섯 개. 그분이 무슨 말을 했는지는 눈에 전혀 들어오지 않았다. 별 다섯 개의 그 이미지가 너무나 강렬했다.(평론가 이동진은 언론 시사회 직후 별 다섯 개 만점과 함께 ‘그 모든 의미에서 무시무시하다'고 평했다)"
-간담회 때“피해자가 피해자가 된 원인을 찾아 들어가고자 했다”고 소개했다. 그렇다면 그 착상은 어떻게 하게 된 건가.
“아직 삼십 대 중반이었을 때다. 그때까지 내 주변에 가까운 분이 돌아가신 적이 없었다. 어렸을 때 할머니가 돌아가신 경우를 빼고는. 삼십대 중반이 되자 주변 분들이 한 분씩 세상을 떠나더라.
음…, 슬픔을 느끼면서 장례식장에 앉아있는데 참 긴 시간이지 않나, 별로 할 게 없는 시간이다. 그 시간 동안 온전하게 돌아가신 분을 생각하게 되더라. 이 분은 왜 가실까. 도대체 왜 가셔야 할까. 그때 이 이야기를 떠올렸던 것 같다."
-그게 언제인가.
“‘황해' 끝난 직후였다."
-영화를 완성하기까지 6년이 걸렸다. 시나리오 쓰는 데만 2년8개월을 보냈다. 정말 긴 시간이다.
“어떤 고민은 종횡으로 넓혀지고, 또 깊게 들어간다. 그러다가 느꼈다. ‘아, 이건 내가 할 수 없는 이야기구나.' 거대한 벽을 느꼈다. 그땐 결심이 필요했다. 이걸 접고 다른 걸 할 것이냐, 아니면 끝까지 할 것이냐. 근데 그냥 가는 걸 택했다. 거기서 이런 비극이 발생한 거다.(웃음)"
-이 이야기를 해야만 했던 이유가 있나.‘거대한 벽'을 느꼈다고 하지 않았나.
“그래서 매력적이었다. 한 인간의 죽음에는 ‘현실적으로' 명확한 이유가 있긴 하다. 내가 궁금한 건 그게 아니었다. 다만 어떻게 죽었느냐가 아니라 도대체 왜 죽어야 하는가, 도대체 왜 그 사람이 피해자가 돼야 했는지 알고 싶었다.
그런데 이런 이야기를 하게 되면, 그 사람이 ‘왜 살아야 하는가' 라는 문제, 이어서 존재 근본에 대한 문제까지 가 닿게 되더라. 누군가가 죽어야 했던 이유가 명확하지 않다면, 존재해야 할 이유도 명확하지 않은 게 아닌가.
이것은 인간종(種) 전체에 대한 질문으로도 확장된다. 그렇다면 이 문제는 또 인간을 탄생시켰다는 신의 문제로까지 이어진다."
-‘신의 문제’라는 게 무엇인가.
“신이 선한가, 악한가 이런 문제다. 이유 없이 죽어야 한다면, '정말 신은 선한 게 맞을까'라는 의문이 들지 않나. 또 피해자가 된 이유를 알 수 없는 것이라면 신이 존재하기는 하는 걸까, 이런 질문도 하게 된다. 평생 공부해도 알 수 없는 질문에 대한 답이다.
그래서 매력적이라는 거다."
-이 문제들은 사실 공부를 통해서도 알기 힘든 것들 아닌가. 특별한 경험을 했다고 해서 알 수 있게 되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이런 이야기를 만들기 위해서 어떤 과정을 거쳤나.
“먼저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런데 책이라는 게 너무 방대하지 않나. 그래서 성직자들을 만나기 시작했다. 이 방법이 영화를 최단기간 안에 만들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영화의 결론을 보면, 결국 성직자들로부터 딱 떨어지는 결론을 끌어내지는 못한 것 같다.
“명확한 결론과는 조금 다른 문제다. 내가 만난 성직자들의 종교는 모두 1000년 이상 된 것이었다. 거기서 느낀 건, 이 종교들이 너무나 완벽하다는 것이었다. 이 종교들의 완벽함이 세상의 변화를 모두 감내해내고 있었다. 종교와 신이 완벽하다는 건 이해는 되는데, 이해가 안 되는 거다."
-직관적으로 어떤 의미인지 이해는 되나 명확하게 손에 잡히지는 않는다. 물론 그 측면이 이 영화의 주제의식과 결부되는 것이겠지만 말이다. 관객을 위해 더 자세한 설명이 필요할 것 같다.
“결국 이 영화의 핵심 키워드는 의심이다. 혼란스러우니까 의심한다. ‘곡성'은 아버지가 딸을 지키려는 이야기다. 아주 극렬한 방어행위를 그린다.
외부의 적으로부터 성을 지키는 것과 유사하다. 심리적인 공성전이다. 성 밖에 누군가가 있다. 아군이라면 문을 열어주고 내 세력을 넓힐 수 있다. 적이라면 절대 못 들어오게 해야 한다. 그런데 밖의 누군가가 적인지 아군인지 판단할 수 없는 그런 상황인 거다."
-성 밖의 사람에 대한 피아구분이 안 될 때 오는 혼란을 이야기했는데, 그렇다면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서 특정 인물이 극단적인 형태로 변화하는 바로 그 장면에 대한 의구심이 든다. 꼭 그렇게 해야만 했나.
“종구의 이야기와 이삼의 이야기는 사실 완전히 다른 이야기다. 이삼은 이삼대로 자신에게 혼란을 주는 어떤 실체를 확인하기 위해 길을 떠난다. 그 종착지에서 만난 그 인물이 특정 형상으로 변하면서 메시아가 했던 말을 그대로 읊조린다. 마치 악마가 예수의 흉내를 내며 예수의 제자를 조롱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때 이삼이 ‘주여'라고 읊조리지 않나. 이것은 해석하기 나름이다. 그를 진짜 악마로 보고 주를 찾는 것, 아니면 예수가 악의 형상을 한 것뿐이라고 믿고 경배하는 것, 관객도 함께 의심한다. 관객에게 선택권을 줬다."
-마지막 질문이다. 모든 배우가 인상적이다. 그래도 가장 인상적인 건 쿠니무라 준이었다. 왜 하필 일본 배우였나.
“앞서 말했듯이 문밖의 존재가 누군지 모른다. 누군지 모른다는 건 혼란을 준다는 이야기다. 이게 무슨 이야기냐면 역동적인 공격 행위가 아니라 잠입이라는 거다.
예리한 칼이 복부를 뚫고 들어오는 게 아니라 바이러스에 감염되는 듯한, 일단 우리와 외형이 유사했어야 했다.
그런데 또 소통은 안 돼야 했다. 멀리서 보면 우리와 비슷한데 점점 가까이 갈수록 이상한 사람을 원했다. 곡성에 중국인은 살 것 같은데, 일본인은 없을 것 같았다.(웃음)"
<손정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