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여성의 창] 수박 도둑

2016-05-13 (금) 03:34:28 김중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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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지금도 수박 도둑질하니?”

잊지도 않고 가끔 놀리던 직장상사. 황당한 경험을 직장에서 나눴던 모양이다. “좀 작은 걸로 들고 나오지~”아무리 맛있는 음식이 있어도 내 양보다 더 먹지 않는데 그 날은 예외였다. 여름방학 때였나, 저녁 먹고 놀다 엄마가 수박 한 통을 갈라 언니와 나에게 안겼다. 수박을 유난히 좋아하는 내게 “실컷 먹어라” 하시며. 먹다 먹다 결국 다 먹지도 못했다.

그래도 얼마나 많이 먹었던지 마루에서 내려 내 방으로 가려고 신발을 신었는데 도저히 움직일 수가 없었다. 마루에 걸터앉아 있다 그대로 누워버렸다.


초등학교 다닐 적 일인데 동생이 지금까지 기억하는 걸 보면, 가족들 모두에게 참 우스운 광경이었던가 보다. 지금은 코스코가 된 프라이스 클럽에서 부모님 것까지 수박 두 통을 챙겨넣었다.

사단은 영수증과 물건을 검사하는 출구에서 났다. 아무 생각없이 영수증과 카트를 보여주는데 한 쪽으로 가 있으란다. 카트에 수박은 두 통인데 영수증에는 한 통 값만 냈단다. 졸지에 수박 도둑이 되어버렸다. 그것도 현행범. 나머지 한 통 값도 내고 가져가겠냐고 묻는데, 주위 사람들 보기 민망해 수박이고 뭐고, 서둘러 그 자리를 떠났다.

그후로 물건을 사면 가게를 나오기 전에 영수증과 함께 점검하는 버릇이 생겼다. 그리고 그 버릇으로 인해 실로 20여년 만에 수박 도둑 누명을 벗었으니 얼마나 다행인지! 갈비를 세 덩어리 샀다.

버릇대로 출구로 가기 전에 영수증과 물건을 하나씩 점검하는데 갈비값 계산이 잘못됐다. 세 덩어리 샀는데 한 덩어리 값만 영수증에 찍혀 있었다. 아찔했다. 또 현행범이 될 뻔했다. 이번에는 갈비 도둑. 기겁해서 코스코 직원에게 얘기를 했다.

고맙단다. 갈비 두 덩이 값을 더 내면서 20여년 도 전에 수박 도둑이 됐던 얘기가 주착없이 튀어 나왔다. 그랬더니 그 친구 왈 “그건 손님 잘못이 아니고 계산을 잘못한 계산대 직원 실수지요.

손님을 도둑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없었을 거예요” 아 그렇구나. 왜 미처 그 생각을 못하고 그렇게 억울하고 무안했을까? 이제 와서 달라지는 것은 없지만 집으로 오는 길이 참 편했다.

<김중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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