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살이가 힘들고 지쳐도 온전한 내 편 하나만 있으면 살아지는 게 인생이라, 내가 니 편 해줄 테니 너는 너 원대로 살아라.”
영화 ‘계춘할망’에서 할머니가 10대 손녀에게 한 말이다. 어쩌면 삶에 지친 모든 사람이 듣고 싶은 말일 것이다.
아름다운 섬, 제주도를 무대로 할머니와 손녀의 이야기를 그린 ‘계춘할망’이 2일 언론에 첫 공개 됐다. 윤여정이 어릴 적 시장에서 손녀를 잃어버린 뒤 10년 넘게 애타게 찾는 해녀 ‘계춘’, 김고은이 할망이 꿈에 그리던 손녀 ‘혜지’를 연기했다.
가출한 10대들과 어울리며 범죄에 휘말렸던 혜지는 우연히 우유를 마시다 ‘미아찾기’ 광고를 보게 되고, 무려 12년 만에 할머니의 품으로 돌아간다. 할머니는 손녀 생각뿐이지만 훌쩍 커버린 손녀는 속을 도통 알 수 없다. 마을 사람들은 혜지의 행동이 불량하다며 수군거리고 혜지는 서울로 미술경연대회에 참석했다가 급기야 사라지고 만다.
이 영화의 목표는 분명하다. 할머니와 손녀가 엮어가는 소소한 일상과 특별한 이야기로 따뜻한 감동과 웃음을 전한다. 반전을 숨겨놓았으나 할머니와 손녀의 이야기는 예상 가능한 범주 내에서 전개된다. 지루하다거나 심심하다고 느낄 소지가 있다.
그런데도 “누군가 진심으로 쓴 이야기”라서 순간순간 마음이 뜨거워진다. 특히 도회적 이미지는 찾아볼 길 없는, 연륜의 배우 윤여정의 얼굴은 보고만 있어도 삶의 고단함이 치유되는 기분이다. 섬세한 노인 분장을 더한 그녀의 얼굴에는 제주도의 강한 햇살과 바람을 견딘 제주 할머니의 강인함과 손녀를 잃고 10년 넘게 겪은 심적 고통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실제로 어릴 적 할머니의 조건없는 사랑을 받았던 윤여정은 “시나리오를 읽고 누군가 진심으로 쓴 이야기라고 느꼈다”며 “어릴 적에는 몰랐던 사랑이다. 나를 제일 사랑해주신 할머니께 바치는 마음으로 참여했다”고 전했다.
김고은과 창 감독의 진심도 보태졌다. 실제로 할머니와 단둘이 사는 김고은은 “할머니에게 선물하고 싶은 작품”이라며 애정을 드러냈다.
창 감독은 늦둥이로 태어나 나이 든 엄마를 뒀었다. “어릴 적 할머니와 사는 것 같다고 생각했고 커서 그 마음에 죄의식을 느꼈다.” ‘계춘할망’은 창 감독이 시나리오 극작과 강의를 나갔다가 한 학생이 졸업 작품으로 낸 ‘계춘할망’ 트리트먼트를 읽고 “어머니를 생각하며 쓴 시나리오”다.
그는 “아무 이유 없이 무한한 사랑을 주는, 소중한 사람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는 영화가 되길” 바랐다. “일상에 지친 현대인에게 감동과 위안을 안겨줄 수 있으면 좋겠다.”
감독의 바람은 어느 정도 통했다. 이날 언론시사회에서는 잠이 든 사람도 있었지만, 여기저기서 눈물을 훔치는 소리가 났다. 제주도의 아름다운 풍광이 그 자체로 주는 ‘힐링’의 정서가 있으며 김고은이 상처 입은 마음을 치유하는 도구로 그림을 그린다는 점도 마음을 편안하게 해준다. 문득 내 삶을 떠올리며 온전한 내 편은 누구인지 생각해보게 된다.
아이돌그룹 샤이니의 멤버 최민호가 혜지의 소꿉친구로 예의 모범생 이미지로 나온다. 류준열이 혜지를 괴롭히는 불량청소년, ‘똥파리'의 배우 겸 감독 양익준이 자유로운 감성의 미술 교사로 출연, 잔재미를 준다. 19일 개봉, 116분, 15세 관람가. <신진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