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몰렌베크의 아이들

2016-04-01 (금) 10:20:28 홍성애(뉴욕주 법정통역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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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해 11월 파리에서 동시다발 테러사건이 나서 바타클랑 극장 등 세 곳에서 많은 사람들이 무고하게 죽었다. 프랑스는 물론 세계 각국이 이 잔인무도한 테러범들의 범행에 분노를 금치 못하고 벌떼같이 이들을 비난하기에 합세했다. 그런데 또다시 최근에 벨기에 수도 브뤼셀의 국제공항 자벤템과 도심가의 말베크 지하철역에서 끔찍한 연쇄테러가 일어났다. 그 테러범들의 근거지가 몰렌베크라는 기사에 내 심장은 멎는 듯 큰 충격을 받았다.

나는 80년대 중반 미국에 오기 전까지 8년을 브뤼셀에서 살았다. 바로 우리가 산 지역이 몰렌베크다. 일종의 행정구역으로 뉴욕으로 치면 퀸즈같은 보로이다. 우리 집에서 도심으로 가려면 62번 전차를 타고 지나는 이곳은 아랍인들 (주로 모로코인들)이 밀집해 사는 곳이다. 그들은 좁은 전차길 양편으로 구멍가게들을 차려 놓고 식료품을 팔았는데 일반 수퍼마켓보다 값이 싸서 우리도 자주 이용했다.

길고 좁다란 가게 안은 두 사람이 같이 지나가기도 어려운 좁은 통로가 있었는데 난방시설도 없이 길가 쪽은 휑하게 뚫려 있어 두툼한 겉옷과 모자, 히잡을 쓰고 장사를 했다. 남편은 상자에 꽉 찬 야채, 과일을 풀어 진열대에 올려놓는 작업을 하면, 아내는 올망졸망 어린애들을 챙기면서 고객들이 원하는 물품을 저울에 달고 돈을 받고… 애가 울고 칭얼거리면 꽥꽥 아랍어로 소리 지르며 욱박지르기 일쑤였다.


나는 생존을 위해 악전고투하는 그들을 보면서, 속으로 이 아이들이 벨기에에서 나고 자라고 이곳 애들과 함께 학교도 다닐 텐데, 과연 이 사회가 그들을 평등하게 지역사회의 일원으로 받아줄 것인지, 아니면 이등 시민으로 차별받으며 부모의 가난과 열악한 환경을 그대로 이어받아 살아갈 건지 심히 염려스런 마음이 들곤 했다.

파리테러 주동자가 이 몰렌베크 태생으로 끼리끼리 또는 형제와 같이 숨어서 테러 모의를 하고 폭발물을 만들었다는 뉴스를 보며 나는 즉시 이들을 떠올렸다. 쌓이고 쌓인 사회문제가 드디어 화산이 폭발하듯 터져버린 느낌이다.

태어나고 자라고 교육을 받은 나라지만 결코 자기 나라가 될 수 없는 그들의 운명… 그들은 생전 가보지도 못한 부모의 나라를 자기 진짜 조국으로 그리워했을지 모른다. 그래서 그들의 종교인 이슬람의 세계정복이라는 꿈을 실현한다는 명분하에, IS의 정체나 의도, 과격한 테러행위가 정의에 입각한 것인지 따져보기 전에, 달콤하고 화끈한 유혹에 빠져 정체성(identity)을 찾은 기쁨과 함께 젊은 혈기로 목숨까지 내놓는 IS 테러대원으로 가담할 결심에 이르렀을 것이다.

그러나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이들의 무모한 행위는 어떤 것으로도 합리화 될 수 없다. 다만 정부차원에서 이민자들의 어려운 환경을 조금이라도 제도적으로 도울 수 있으면 얼마나 좋으랴.

테러에 더 강력하게 대응하는 조치로는 근본적인 해결이 나지 않을 것이다. 피차에 악의와 복수심만 더욱 강해질 뿐이다. 벨기에는 서유럽 인구대비 지하디스트 배출 비율이 가장 높은 나라이며 아랍계 청년 실업률은 50%대라니 이보다 더 좋은 테러양성 토양이 어디 있겠는가. 이제는 모두가 진정한 평화공존을 위해 심각하게 풀어야 할 문제며 과제라고 생각한다.

<홍성애(뉴욕주 법정통역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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