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존경하는 인물이 있다. 나폴레옹, 징기스칸, 도산 안창호 선생….나 역시 존경하는 인물이 있었는데, 나이가 들면서 바뀌었다. 어렸을 때는 수필가 전혜린을 너무나 존경했다.
멋있는 삶을 짧게 살다 간 사람, 범상한 일상에 만족하지 않고 끊임없이 이상을 향한 열정을 가진 사람을 동경해 나도 그처럼 서른까지만 살고 싶었던 적도 있다. 그는 “이상을 향한 동경”을 버릴 때 인간은 현실이라는 울타리 안에 자족하는 돼지가 되고 만다고 했다.
그리고 세월이 흘렀고, 우연히 다시 전혜린 책을 정독을 할 기회가 생겼다. 우선 그가 번역한 책들은 지금 읽어도 지루하지 않았다. 상황묘사가 참 뛰어났다. 하지만 그렇게 삶에 대한 열정이 가득한 사람이 왜 자살을 선택했을까? 이제 와서 생각해보니 순전히 개인적인 문제로 그랬던 것은 아니었을까? 지극히 현실적인 추측을 해본다.
어쨌든 실제를 보는 듯 섬세한 표현력과 매끄러운 문체에 다시 전혜린의 글에 매료됐다. 하지만 어릴적 감동은 옅어지고 비현실적이고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건 왜 일까? 내가 현실적인 사람이 되어버린 탓일까? 그의 글을 읽을수록 지나친 나르시시즘에 빠져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나이들면서 존경하는 인물들이 아주 많아졌다. 우사 김규식, 묵관 현익철, 이봉창 의사 등등...또 30대 초반 소록도에 와서 한센병 환자들을 40년 돌보던 오스트리아 수녀님들도 있다. 마가렛 피사랙, 마리안트 스테거 두 수녀님은 1960년 소록도에 와서 봉사한 후 병들고 늙어서 환자들에게 폐가 될까봐 2005년 조용히 고국으로 돌아간 숭고한 분들이다.
떠날 때도 요란한 송별식을 피해 편지 1장 남기고 고국으로 돌아가셨다고 하는데 진심으로 고개가 숙여진다. 그리고 한국이름 진필세, 제임스 시노트 야고보 신부님도 존경한다.
동족도 외면한 데모 학생들을 위해 이방인 신부님이 약자의 편에 서서 부당함과 진실을 알리셨다. 이렇듯 내가 존경하는 분들은 돈이 많은 부자도 아니고, 권력을 쥔 정치인도 아니고, 많이 배운 지식인은 더더욱 아니다. 남을 위해 헌신하신 분들이다.
<
황 케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