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여성의 창] 남편에 대한 단상

2016-03-11 (금) 02:21:13 황선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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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어느 게시판에서 "남편이 장 봐온 것 좀 보세요" 하는 사진을 본 적이 있다. 정확하진 않지만 요지는, 남편한테 1. 토마토, 2. 바나나, 3. 우유, 4. 사과, 5. 오이 식으로 사올 물건을 적어줬더니, 토마토 한 개, 바나나 두 개, 우유 세 통, 사과 네 개, 오이 다섯 개를 사왔다는 식이었다. 어떤 남편은 아내가 봉지에 든 감자를 반만 껍질을 까서 삶아 두라고 했더니, 감자 껍질을 반만 까서 전부 삶았다는 사진을 본 적이 있다. 재미있는 사실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대부분의 아내들은 이런 이야기에 공감하며 배를 잡고 웃는다는 것이다.

올해가 결혼 40주년인 친정 부모님보다는 훨씬 밑돌지만, 나도 남편과 만난 지 벌써 19년째이고, 결혼한 지 12년이 되어간다. 남편은 참 한결같은 사람이다. 남편은 조용하고, 이성적이고, 배가 고프지 않고, 담아주는 음식을 남기는 법이 없고, 물건에 욕심이 없다. 그리고 집안일에 있어서는 명확하고 세세한 지침을 선호한다.

한번은 아이가 좋아하는 피자를 만드는데, 저녁 시간이 늦었고 급한 마음에, 나는 정신없이 토핑을 준비하며 남편에게 (피자 판을) 물에 헹구고 행주로 닦아달라는 부탁을 했다. 남편은 피자 반죽을 꺼내들고 내가 쳐다보기를 기다리며 "정말 헹궈? 물에다?"라며 재차 물었지만, 나는 너무 바빠 보지도 않고 "응, 헹궈서 닦아줘" 했다. 잠시 뒤, 젖은 반죽을 들고 도무지 어딜 어떻게 닦아야 할지 이해할 수 없는 표정을 짓고 있는 남편을 발견한 적이 있었다. 나의 가장 첫번째 실수는 남편에게 명확한 정보를 전달하지 못했던 것이고, 두번째는 내가 남편의 특성을 잠시 잊었던 것이었다.

친정엄마 말씀이, 나는 어려서부터 아버지 같은 사람과 결혼하겠다고 했는데, 정말로 남편이 친정 아버지와 똑같은 성격을 가졌다는 것이다. 아버지를 아내의 입장으로 생각해보지 않아 잘 모르겠지만, 내가 어려서 생각하던 아빠는 늘 일찍 퇴근하셔서 우리와 잘 놀아주신 자상한 분이니 내 남편과 같다. 지인 말로는, 남편이 출장 감으로써 생활에 조금이라도 불편이 생기면 남편이 가정에 도움을 주고 살았다는 것이고, 별 차이가 없다면 그가 자기 몫은 하고 살았다는 것이고, 오히려 출장을 가줘서 고맙다면, 남편이 한 사람 몫을 하지 못하고 살았다는 것이라는데...! 드디어 출장 갔던 남편이 오늘 돌아온다. 나는 남편의 빈자리가 크게 느껴지는 긴 긴 일주일을 보냈다.

<황선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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