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창] 내가 사는 풍경
2016-03-10 (목) 02:39:29
양벨라
비 온 후의 샌프란시스코는 마냥 평화롭습니다. 바람이 쉬는 나무 위로 푸르다만 하늘이 빌딩 사이에 걸려 있습니다. 누군가 담배 연기로 동그랗게 입 그림을 그려 놓고, 놀라 허겁지겁 손으로 휘저은 듯한 구름이 여기저기 숨을 곳을 찾습니다. Great Highway 긴 해변을 따라 가면 Cliff House에서 해송과의 절경을 만납니다. 새파란 바다가 창공을 안은 채 아직 좀 이르다고 게으른 기지개를 켭니다. 햇볕이 타닥타닥 튕겨 나옵니다. 제주 은갈치가 떼지어 건들대는 웨이브에 서서 서핑족이 4분의 3 박자 파도타기를 합니다. 바람도 그들과 왈츠를 합니다. 조금 조금씩 엷어져가는 산등성이에 시선이 멈추면, 그리움도 다시 거기 서 버립니다.
춘삼월에 버선발로 비가 밤을 새워 왔습니다. 그 덕에 재미를 단단히 본 튀지 않던 꽃과 풀이 허세를 부립니다. 눈 아래 들꽃마저 고개를 들고 꾸역거리며 봉우리를 틉니다. 햇볕이 그저 따숩습니다. 하얀 콩만한 새들이 우르르 카펫을 폈다 접었다 놀이를 합니다. 요염한 요트가 점점이 화려한 오션을 만들어 줍니다. 눈이 왕호강을 하여도 하품은 염치없이 오는 길 내내 줄을 댑니다.
아이들이 나간 자취는 어디에도 여유라고는 없습니다. 쪼개고 또 쪼개서 초읽기를 한 흔적이 한눈에 훤합니다. 반듯한 것이라고는 벽에 걸린 것뿐입니다. 누구랑 함께 사는 냄새가 납니다. 오늘도 혼자는 아니고 다만 혼자서 어둠이 올 때까지 있을 뿐입니다. 미처 끝내지 않은 수저가 꽂힌 국 말은 밥은 불어 있습니다. 누군가 일찍 나섰나 봅니다. 밤을 새워 일을 하고 오는 나를 위한 ‘된찌’라고 적힌 메모도 있군요. 된장찌개! 내 뱃속 사정을 헤아릴 줄 아는 이들을 보는 것은, 일주일에 몇 컷이 되지 않습니다. 청진기를 목에 두르고도 감기던 잠이, 환한 대낮에 듬성듬성 제멋대로 오다 가다를 하더니, 어둑해지면 작업을 멈춥니다. 별이 손짓을 하면, 나도 누군가와 같이 정돈된 곳을 몇 군데 흐트려야만 집을 나섭니다. 한때는 나그네가 구름에 달 가듯 강나루를 건넜고, 나는 차를 몰고 구름에 달 가듯 베이 브릿지를 건넙니다. 연분홍 복숭아꽃과 흰 배꽃이 가로등 아래서 대화를 합니다. 달이 내 뒤를 졸졸 따라오며 묻습니다.” 나랑 얘기할래요?”
<양벨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