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여성의 창] 무조건적인 로망

2016-03-01 (화) 02:02:19 이혜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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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엄마는 자식들이 음악하는 걸 그닥 좋아하지 않았다. 충분한 형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음악 시키는 것이 아까웠나 보다. 어렸을 때 여자아이라면 거의 누구나 다녔던 피아노 학원도 딱 한번 연습하기 싫다고 했다가 바로 이 기회구나 생각하셨는지 그냥 매몰차게 끊어버리셨다. 그 뒤로 난 음악을 배우질 못했다. 자식 장가까지 보낸 내 남동생도 아직도 엄마가 자기에게 악기 안 가르쳐 준 것이 속상하다고 말하곤 한다(그 아인 독학으로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배웠다).

난 목회자의 아내로서 없는 살림이었지만, 다른 학원은 못 보내도 피아노 학원만큼은 꼭 보냈다. 당시에는 아이들이 여러 학원(주산학원, 컴퓨터 학원, 수학학원, 웅변학원, 종합학원 등)을 다니는 것이 보통이었는데 동네 사람들이 전공할 것도 아닐 피아노를 그렇게 쓸데없이 시키냐고 이상하게 여겼다. 하지만 난 음악 교육이 삶에 있어서 기본교육이라는 신념을 가지고 피아노 학원 하나만을 고집했다. 실제로 중세 시기엔 음악이론이 수학, 천문학, 논리학과 대등히 대학과정 필수 과목 중 하나에 속했다.

난 자식들이 음악연주를 할 때 참 행복하고 좋다. 우리 아이들은 나를 안 닮아서인지 음악에 재능이 참 많았다. 어려서부터 여러 교회에서 반주자 노릇을 톡톡히 할 때, 또 학교에서도 대표로 연주할 때, 그리고 집에 온 손님들 요청으로 반주해줄 때 난 참 행복했던 것 같다. 지금도 자기들은 듣기 싫겠지만 “피아노 한번만 쳐봐” 하고 맨날 부탁하곤 한다.


우리 아이 넷 중 유일하게 절대음감이 없던 장남인 둘째 녀석이 고등학교 2학년 올라갈 때쯤 음악을 공부한다 했을 때 뒷바라지해주지도 못할 거면서 가족 중 유일하게 찬성한 사람은 나이다. 난 음악에 무조적인 로망이 있는가 보다. 그 아이가 학부에서 작곡 전공 후 대학원에서 합창 지휘를 전공한다 할 때 마치 내가 그 아이의 지휘에 맞추어 합창을 하는 것처럼 흥분이 되었으니.

사실 이런 나의 음악관에 대해, 무조건적인 지지에 대해 나는 심각하게 고민한 적도 많다. 항상 힘든 살림에 주위에서는 “쯧쯧, 엔지니어를 하게 했어야지”라는 말도 들었고, 때론 아이들조차 “그때 왜 반대하지 않았어요?”라고 하소연할 때도 있었으니. 그래도 아이들이 음악을 배우게 한 엄마에게 가장 감사하다는 말을 할 때면 엄마로서 아이들을 잘못 인도하지 않았구나 싶어 안도의 숨을 쉰다.

<이혜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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