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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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마추어가 보는 미국역사 (91) 미국원주민들의 슬픈 역사①

2016-02-12 (금) 조태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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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merican Indian’이라는 공인된 호칭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필자는 이 글에서 가능한 한 ‘미국원주민’이란 호칭을 써왔다. 미국원주민들은 엄밀한 의미에서 American 도 아니고 Indian 은 더구나 아니다.

미국원주민들에게 미국은 1900년대에 들어와서야 미국시민권을 주었다. ?Indian 이란 호칭은 Columbus 등 초기 항해자들의 지리적 혼동 에서 생겨난 말일뿐 인도사람이라는 표현은 애당초 틀린 얘기이다. 그냥 원주민이라고 써도 될 일이지만 원주민은 하도 세계 여러 군데에 있는 까닭에 지역을 국한하기 위하여 미국이란 단어를 빌려다가 미국원주민이란 신조어를 만들어본 것이다.
 
 미역사가들은 거의 의도적으로 원주민 (aboriginal) 이나 원주인 (original owner)이란 표현을 쓰지 않는 것 같다. 다분히 원주민들의 영토소유권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의도가 빤히 들여다 보이는‘초기정착자 (Early Settler)’란 표현을 쓰거나‘먼저 온 자(Old Comer)’란 표현을 써서 원주민들의 주권이나 토지소유권 등을 애써 인정하려 하지 않는 것 같다. 그런가 하면 원주민을 비하하는 말로 Savage 라는 용어가 한때 쓰인 적도 있었는데 , Savage 란 원시인으로 자연동물에 더 가까운 존재로써 영토나 토지소유권 같은것은 가질 수 없는 자연의 일부라고 간주해 버리려는 의도가 숨겨있는 말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초기 미국인들 중에는 원주민들은 잡초나 자연동물과 같은 것으로써 정리되거나 제거되어 버려야할 존재쯤으로 생각했었던 사람들이 많이 있었던 듯하다. 그래서 백인들이 천 년 전에 단 한번이라도 자국의 탐험가가 어느 지역을 왔다갔거나 아니면 항해 중 우연히 한번 지나쳤으면 말뚝을 박아놓은 것과는 상관없이 자국의 영토라고 주장하였다. 만일 그런 원칙을 국제적으로 적용했다면 아마 북미대륙은 중국영토라고 얘기할 수도 있을 것이고 남미대륙은 일본이나 남태평양 제도들의 영토라고 얘기했어야 맞을 것이다.
 
중국에는 미대륙 비슷한 곳을 다녀왔다는 기록이 있다고 하며 남미에서는 일본 것과 똑같다는 도자기 파편이 출토되었다는 증거가 있는 까닭이다.또 북미대륙의 인종이 홍인종이라고 속설을 얘기하고 있지만 과학적으로는 아시안이었다는 것이 정설로 인정되고 있는 까닭이다.
 
현재의 미국은 전 세계에서 정의스러운 일을 더 많이 하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이지만 동시에 미국은 건국해 오면서 저지른 몇 개의 지울 수 없는 원죄들을 가지고 있다. 아마 미국의 흑인들 보다도 더 억울하게 희생을 당하고도 아직까지 한번도 사죄를 받아보지 못한 사람들이 미국원주민들이라고 생각된다. 미국이 사상적 조상으로 치는 Pilgrim Fathers 라는 사람들이 처음 북미대륙을 개척하러 왔을 때 ,얼어 죽고 굶어 죽게 되었던 그들을 먹여 주고 살려준 사람들이 미국원주민이었는데 미국원주민들은 보은 대신에 참살, 사기, 영토피탈을 당했다.

종교의 자유를 찾아서 험지인 북미대륙 까지 찾아온 Pilgrim Fathers 의 종교는 백인들이 믿던 기독교를 의미하였고 자유에는 예배의 절차, 신앙강조점의 차이 등을 인정해 달라는 극히 국한된 개념이었지 피부색깔이 다른 사람들이 산이나 강이나 바위를 신으로 믿는 종교를 허용한다거나 ,자유스럽게 그런 신들에게 예배해도 된다는 의미는 절대 아니었다.
 
 All men are created equal! 이라고 미국독립선언서에 절규했던 제퍼슨도 미국원주민이나 흑인들이‘created equal’이었다는 생각은 꿈에도 해보지 않았다. 원주민들이 미국과 맺었던 국제조약들은 전부 일방적으로 파기되었으며 원주민들의 권리와 영토들은 법적으로 제도적으로 점차 약탈당해 갔다.


그러나 백인들의 학대를 운명으로 체념하고 번번히 실패한 몇 번의 무장항쟁 이외에는 순종하였던 흑인들과는 다르게 미국원주민들은 200여 년 동안 거의 멸족이 될 때까지 꾸준히 무력으로 항쟁해 왔다. 그들의 필사적인 항쟁은 서부영화에 원시적 불법자들로나 그려져 있다. “Indian Summer,” “Indian Rain,” “Indian Giver” 등 이상한 자연현상이나 나쁜 인간행동에는 모두다 “Indian” 이란 형용사를 붙혀서 원주민들을 경멸하여 왔다.
 
Columbus의 미대륙 발견 당시 80여만 명이었을 것으로 추산되던 원주민들은 한때 25만명 정도가 되도록 멸족되어 가고 있다가 1900년대 말에 이르러서야 다시 80만명 정도로 원상복귀 되었다고 한다.이들의 인권유린은 UN에서조차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세상에 이렇게 억울한 역사가 또 있을까?

미국의 역사중 가장 원통하고 슬픈 chapter가 아닐 수 없다. 미국의 역사는 이들을 계획적으로, 자연적으로 철저하게 파멸시켜 왔다. “억울하면 출세해!”라는 듯 이들을 멸시해 왔으며 이들의 정당한 무력항쟁을 1890년에 이르러서는 완전히 근절시켜 버렸다. 분명히 미국역사의 한 대목인 미국원주민들의 슬픈 역사를 아주 간략하게 써보고자 한다.

남북전쟁이 시작되던 1861년 까지만해도 북미대륙은 무주공산이 더 많았었다. 동쪽으로는 현재의 미네소타, 아이오와, 미주리, 알칸사스 주 등의 동부와 남쪽으로는 텍사스 남부들과 서쪽으로는 해변연안으로 캘리포니아, 오리곤, 워싱턴 주들의 서부들이 개척되었고, 대륙의 동서해안 지역을 제외한 광활한 중부지역들은 유타의 몰몬교도들, 콜로라도의 광부들, 뉴멕시코의 멕시칸들을 제외하면 그 당시까지 개척된 북미대륙 전체 보다, 서유럽 전체보다 더 넓은 땅들이 미발견 상태로 대륙의 중부에 방치되어 있었다.

대륙의 동서해안을 왕래하던 사람들이 가끔 지나가기만 하였을뿐 지형, 기후, 산맥, 강들에 대해서 전혀 알려진 바가 없었고 지도도 없는 상태에서 사람은 영원히 살 수 없는 사막지대로만 알려져 있었다. 후일 이 사막들은 끝이 없는 평지 옥토로, 무한한 광물자원으로, 공업도시로 개발된다. 그러나 “무인지경,” “무주공산”등은 백인들 입장에서 본 얘기이고, 실은 그 광활한 대지에서 22만5천명 정도로 추산되던 미국원주민들이 수 백 년째, 아니 수 천 년째 살아오고 있었다. 이들은 농사를 짓는 사람들이 아니었던 까닭에 자연에서 나오는 과일과 곡물을 식량으로 먹고 살았음으로 일인당 필요했던 면적이 대단히 넓어야 했으며, 육류는 가축이 아니고 자연동물들을 잡아먹고 살았는데 주로 버팔로(학명으로는 Bison)를 잡아 먹고 살았다.

버팔로는 지금은 다 없어졌지만 옛날에는 유럽에도 많았다고 한다. 버팔로는 미국원주민들에게 육류, 연료 (말린 소똥), 가죽으로 의복, 천막 등을 제공해 주는 생존의 기본이 되는 동물이었는데 컬럼버스 도착 당시에 1,500만 마리는 되었을 것으로 짐작되었던 버팔로들이 백인들의 무분별한 남획으로 1800년대말 쯤에는 겨우 천 마리가 생존해 있었다고 한다.이 버팔로의 멸종은 미국원주민들의 멸종과 직접적인 상관 관계가 있었다.

인간이 살수없는 땅으로 여겨오던 북미대륙을 미국원주민들은 전통적으로 남용하지 않고 자연보호를 해오면서 자연과 함께 살아왔었다. 백인들이 문명을 가지고 나타나기 전까지에는 한떼의 길이가 무려 50마일 씩은 되었을 것이라고 추정될 정도로 번성하였던 버팔로는 1850여년경에 미국대륙 횡단철도가 건설되면서 남쪽과 북쪽으로 갈라져 번성에 지장을 받기 시작하였는데, 철도부설 노동자들과 철도인근 동네 주민들의 식량으로 남획되기 시작하였고, 철도가 부설된 후에는 도시에서 몰려오는 “sportsmen”들이 객차에 편히 앉아 나타나는 버팔로를 모두 총으로 쏘아 살육하였고, 고기를 기차로 미국 동부지역으로 보내기 시작하였다.

버팔로 가죽으로 로프를 만드는 기술이 개발되자 버팔로 살육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어 한해에 300만 마리를 남획하기도 하였다고 한다. 미국원주민들의 식량난이 심각해지기 시작하였다. 버팔로 말살이 미국원주민 멸족을 위한 국가정책은 아니었을지라도 원주민들은 삶의 터전을 뺏기기 시작하였다.

<조태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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