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여성의창] 대청소

2016-01-21 (목) 03:00:17 서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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썰물이 밀려나간 것처럼 집이 썰렁해졌다. 개학을 맞아 아이들은 모두 다시 학교로 돌아갔고, 각방 짐과 옷가지들이 수북이 쌓여있던 곳엔 아이들의 흔적과 먼지만 남았다. 이번 겨울에는 유독 비가 자주 와서 참 좋았다. 어두컴컴하고 부슬부슬 내리는 비는 게으름부리기에 딱맞아, 본격적으로 전기장판을 방바닥에 내려놓고 뒹굴기 시작했다. 함께 TV도 보고, 음악도 듣고, 배가 고프면 맛있는 간식도 만들어 먹었다. 함께 TV를 보면서, 배가 아프고 눈물이 나도록 꺼이꺼이 웃기도 했다. 방에서는 아직도 아이들의 냄새가 난다. 봄방학에나 보게 되려나!

창문을 활짝 열고 청소를 시작했다. 지난 연말과 방학을 정리하는 대청소다. 전기장판은 제자리로 들어갔고, 큰 자리를 차지하던 크리스마스 트리도 제 박스로 들어갔다. 아이들이 가고 나면 쓸쓸할 때마다 하나씩 정리하려고 미뤄 두었던 이 트리 장식은 내가 유난히 아끼는 거다. 나무 밑에 서 있던 할아버지 인형들을 정리해서 넣을 때는 나도 모르게 ‘다음 크리스마스에 다시 봐요’라고 혼잣말도 하고, 하나하나 꼼꼼히 포장해서 넣어둔다. 아이들의 빨래로 세탁기가 종일 돌아간다. 아이들 덕분에 빽빽이 찼던 냉장고도 이젠 다시 공간의 여유가 넘친다.

한국은 다음주가 소한, 그 다음다음주가 입춘이란다. 아이들과 함께 뒹굴었던 방학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봄이 저만치서 다가오고 있었다. 이제 추위와 함께 겨울이 가려나? 창문을 열고 온 집안을 청소하고, 겨울 물건들을 정리하니 정말 겨울이 다 간 것 같다. 계절을 정리하고 준비하는 것이 번거롭기도 하지만, 새로운 계절을 맞이하는 또 하나의 기다림이기도 하다. 이제는 따스할 또 다른 설레임으로 봄을 기다린다. 겨울은 성탄절과 방학이 있어 좋고, 봄은 설레임과 꽃이 있어 좋다. 여름은 활기 넘치는 젊음이 있어 좋고, 가을은 말 그대로 감사와 풍요겠지…

겨울을 정리하고 나니, 내 마음에도 봄이 온 것 같다. 나도 이젠 인생에 연륜이라는 게 조금씩 쌓여지는 걸까? 나이 들어가면서 고집스럽기보다 인자하게, 잔소리보다 칭찬을 아끼지 않는 어른으로 살고 싶다. 대청소와 함께, 나도 나의 좋지 않은 옛것을 버리고, 새사람으로 거듭나고 싶다.

<서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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