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까운 지인들이 이제 앞서거니 뒷서거니 60고개를 넘기고 있다. 옛날 같으면 뒷방으로 물러나서 손자들이나 돌볼 나이였는데, 정말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듯이 모두 아직도 쨍쨍하다.
그동안 자식들 키우고 생활하며 크든 작든 무언가를 이루려고 눈코뜰새없이 바쁜 시간을 보냈지만 자식들도 독립해서 떠나고, 사는 것도 어느 정도 안정이 되니, 이제 인생의 제2막이 새롭게 시작되는 느낌이 드는 때이기도 하다. 지금까지의 인생은 밖으로 무엇인가를 해야 하는 책임과 의무의 시간들이었지만 앞으로의 인생은 마음먹기에 따라 자기 자신에게 충실할 수 있는 귀한 시간들이 될 수도 있다.
그동안 살아오면서 인생의 고비마다 겪었던 힘들고 어려웠던 경험들은 앞으로의 삶에 훌륭한 거름이 되어줄 것이고, 조금만 스쳐도 쓰라렸던 크고 작은 마음의 상처나 아픔들은 그동안 새살이 돋아서 웬만한 비바람에도 흔들리지 않게 나를 받쳐줄 것이다.
머무르고 싶었던 행복했던 순간들이나 아끼고 사랑했던 소중한 인연들과 엮었던 추억들은 가끔씩 쓸쓸하고 외로울 때 따뜻한 햇살이 되어줄 것이다.
지금껏 내 생명을 건강하게 유지할 수 있었음에, 인생을 새롭고 의미있게 변화시킬 수도 있는 아주 적절한 때가 보너스 같이 나에게 주어진 것에 무한한 감사를 느낀다. 빨리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안달할 필요도 없이 보람을 느끼고 내 가슴을 설레게 하는 일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신나는 일인가!
그동안 바쁜 생활에 밀렸던, 해보고 싶었던 일들이나 스스로 즐길 수 있는 보람된 일들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작가가 되려는 것이 아니라 정말 내면의 울림을 나만의 언어로 표현해볼 수도 있고, 화가가 된다기보다 아름다운 자연을 여러가지 색채로 그려낼 수도 있을 것이다.
자연으로 돌아가 흙과 더불어 살 수도 있을 것이다. 봄의 햇살을 온몸에 쪼이며 밭을 갈고 두렁을 만들어 씨뿌리며 두손으로 보드라운 흙의 느낌을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그야말로 오랫동안 잊고 살았던 내안의 어린아이인 채로 있을지도 모르는 나 자신을 꺼내어 진지하게 여러모로 가꾸어 나갈 수 있는 것이다.
이제부터는 밖의 웬만한 것은 여유로움으로 아우르고, 안으로 쉴 수 있는 명상하는 삷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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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인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