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여성의창] 아들의 한국어

2016-01-13 (수) 03:33:26 정윤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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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촌 동생 둘은 미국에서 태어났다. 동생들이 초등학교 여름방학 때 한국에 놀러 왔는데 영어로만 말을 했었다. 지금 생각하면 당연했는데, 어린 나는 부모님이 두분 다 한국 분인데 한국어를 왜 못할까 생각한 적이 있다. 친구에겐 초등학교 5학년 딸과 3학년 아들이 있다. 둘 다 어렸을 때 미국으로 와서 한국어를 어려워 한다. 딸은 그래도 아들보다 한국어를 잘 이해해서 아들에게 수학을 설명해야 하는 경우가 있으면 딸이 와서 도와준다고 했다. 딸이 캠프를 갔을 때 아들에게 수학을 설명하기 힘들었고, 캠프갔던 딸이 그리웠다고 했다.

딸이 이제 사춘기긴 하지만 영어로 상담을 들어주지 않아도 되니 다행스럽게 보인다. 딸의 감정이나 고민을 언어의 장벽으로 못들어 준다면 얼마나 슬플까 싶다. 다른 집도 비슷한 경우가 많았다. 한국어를 가르치고 싶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게 되고 아이들끼리 영어로만 말하게 되고 영어가 편해져서 부모에게도 영어로 대화한 듯했다.

남 일 같지 않았다. 아들은 한국어 기초가 약한 상태에서 영어를 공부하게 되었다. 아직 한국어를 기억하지만 또래 한국 친구들과 놀 때 보면 한국어보다 영어를 주로 쓴다. 전에 비해 영어에 노출된 시간이 많고 한국어 쓰는 시간이 적다. 점점 영어로만 말하려 할 것이다. 영어권 환경이라 어쩔 수 없지만 더 슬픈 상황은 잘못된 한국어를 사용하는 것이다. ‘공부하자요’, ‘먹자요’, ‘내 아빠 어디 있니?’ 등 한국말이긴 하지만 한국에선 절대 쓰지 않는 한국말들을 가끔 어른들이 어린아이들에게 쓸 때가 있다. 어른들은 장난으로 쓰는 한국말일 테지만 아이들은 있는 그대로 쓰게 된다.

아이가 커서 큰 고민을 상담하고 싶은데 고민이 부모에게 전달이 안된다면 아이는 고민을 풀 곳을 잃게 된다. 내가 아무리 영어를 잘해도 말 속에 포함된 아이의 미묘한 감정을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아들은 한국어를 잊어가고 있는데 한국어를 배우기 어렵고 어떻게 하면 될지 모르겠다. 사촌 동생들도 한국어를 배우고 싶었지만 배울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을 것 같다.

<정윤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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