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창] 아른스베르크의 불꽃놀이
2016-01-05 (화) 03:50:02
김예일 기자
새해가 밝았다. 2015년의 마지막 밤 하늘을 곳곳에서 아름다운 불꽃이 수놓았다. 나도 남편이랑 발코니에서 저 멀리 샌프란시스코의 하늘을 수놓는 수많은 폭죽들을 감상했다. 불꽃은 아름다웠지만 오래 구경하지는 못했다. 아기가 깰까 걱정됐기 때문이다.
나는 아기가 깰까봐 새해 불꽃놀이가 꺼려졌지만 독일의 아른스베르크 주에서는 난민들이 폭죽소리를 듣고 전쟁의 기억을 떠올릴 수 있다는 이유로 2015년 마지막 날의 폭죽놀이를 금지했다고 한다. 불꽃놀이는 폭죽 구매를 위해 매해 약 1200만 유로(약 154억원)이 소비될 만큼 독일인들이 좋아하는 새해맞이 전통이라고 한다. 나의 아픔도 나의 가족의 문제도 또 우리 국민의 일도 아닌데 하룻밤의 즐길 권리와 수년간 내려온 전통을 타인의 아픔을 보듬기 위해 포기할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아른스베르크 주에서 일곱 개의 언어로 번역해 배포한 폭죽놀이 금지령은 단연컨대 그 어떤 새해맞이 불꽃보다 아름다웠다.
새해는 원숭이해다. 공교롭게도 십간의 병과 십이지신의 신이 결합되어 병신년이 되어버렸다. 연말 연초에 소셜네트워크에는 이 특이한 결합을 농담의 소재로 삼은 새해 축하 문구가 넘쳐났다. 하지만 이 단어가 장애인과 여성을 비하하는 단어이며, 이 말을 가지고 웃고 떠드는 새에 사회적 약자들이 소외되고 무시될 수 있다는 사실을 떠올리는 사람은 많지 않은 듯해 보였다.
시끌벅적하게 새해가 와도 변하지 않는 사실 가운데 하나는 인간이 더불어 사는 존재라는 것이다.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고 소수자의 인권과 인격을 침해할 수 있는 것들을 고민할 때 더 살만한, 사람 냄새 나는 2016년을 만들어나갈 수 있지 않을까. 새해엔 사격소리 같은 폭죽소리에 이미 고향잃은 사람들이 전쟁의 트라우마로 괴로워할까봐 불꽃놀이라는 오래된 전통을 내려놓은 아른스베르크의 사람들의 배려를 기억하자. 병신년이란 말로 웃고 떠드는 권리를 내려놓고, 그 단어에 아파하는 상처입은 사람의 마음을 떠올리자. 단연컨대 ‘나’로 점철된 새해 계획보다 ‘너’를 배려하는 마음 하나가 훨씬 더 성숙하고 의미있는 2016년을 만들 것이다.
<김예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