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여성의창] 참으로 감사한 감사절

2015-12-10 (목) 02:38:47 서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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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창으로 들어오는 햇살이 너무 따뜻하다. 하지만 계절은 어김없이 찾아와 따뜻한 창문너머의 쌀쌀함에 어깨를 살짝 움추리게 한다.

한국은 아마도 수능이 끝난 이맘때쯤 집집마다 김장과 겨울준비로 많이 바쁠 것이다. 나도 예전엔 부모님집에서 함께 김장을 했다. 전날부터 미리 배추를 소금에 절이고, 이른 아침, 밤새 잘 절여진 배추를 씻으면서 김장이 시작됐다.

김장철 한국 날씨는 무척 쌀쌀하다. 하지만 늘 밖에서 일을 시작하시는 어머님을 두고 따뜻한 실내에만 있을수 없어, 난 늘 추위와도 한바탕 씨름을 해야 했다. 엄청난 양의 배추를 씻다보면 밖의 추위에서도 땀이 나기 시작한다. 그때 내 등에 내리쬐던 그 따스한 햇빛이 얼마나 감사하던지…


전날 저녁내내 썰어둔 무채와 풀을 준비해놓고 김치 담글 준비를 한다. 그 많던 배추가 김치통에 하나하나 담겨져 또 하나의 산처럼 쌓이면 우리의 겨울양식 준비가 얼추 끝나간다. 일을 끝내고 온 가족이 함께 먹는 보쌈은 노동의 대가 만큼이나 맛있었다.

내가 아주 어렸을 적에는 연탄이 배달되고, 엄마와 할머니가 어마어마한 양의 김장 담그시는 걸 보고 나면, ‘아, 이제 겨울이 시작되는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고구마와 동치미는 따뜻한 겨울을 보내는 우리의 필수 간식이었다.

추수감사절을 맞아 한국에서 부모님이 오시고, 딸이 학교에서 돌아왔다. 가족들이 모이니 사람의 온기로 따뜻하고, 가족들로 인해 음식을 하니 주방에서 열기가 나온다. 집안이 훈훈해졌다. 이 훈훈함에 몸은 피곤하지만 또 다른 기쁨이 나를 설레게 한다. 가족이 많아지니 내 발걸음은 다시 두 배로 빨라졌다. 그들에게 어떤 따뜻한 음식을 대접할까? 함께 음식을 먹으며 대화를 하고, 얼굴을 마주보며 눈을 맞추고, 따뜻한 정을 함께 나눌 수 있는 그런 식탁의 자리가 마련되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감사하고 또 감사한지 모른다.

가족과 함께 따뜻한 음식으로 추위도, 움츠러든 마음도, 그리운 한국 생각도 조금은 잠시 잊을 수 있을 것 같다. 한 해의 수고와 노고까지 위로받을 수 있는, 이런 가족과 따뜻한 식탁을 허락하신 분께 감사드린다.

<서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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