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여성의 창] 만혼의 후배들에게

2015-11-27 (금) 03:24:52 베로니카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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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 여러 가지 이유로 만혼이 시대적 추세이다 보니 30-40대 싱글들을 봐도 ‘결혼이 늦나 보다’ 정도로 여길 뿐 특별한 우려가 뒤따르지 않는다. 그러나 내가 결혼했던 17년 전만 해도 상황은 매우 달랐다. 나를 처음 만난 사람들은 당연히 기혼이리라 짐작했고, 미혼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 혼기 놓친 딸을 둔 부모님 걱정과 함께 짝찾기 어렵겠다는 걱정 어린 말을 덧붙였다. 그러나 나는 시집못간 노처녀 취급을 받았던 주변 분위기에 개의치 않고 참으로 의연했다.

결혼에 대해 흔들리지 않는 정확한 철학이 있었기 때문이다. 언니들은 아버지의 성화에 못 이겨 결혼을 하였고, 사회생활을 통해 자기 실현을 해 보지 못한 것에 대한 미련이 생길 때마다 아버지를 탓하는 걸 자주 보면서 ‘나는 절대로 언니들과 같은 결혼은 하지 않으리라’고 다짐하였다. 아무리 아버지가 결혼압력을 넣어도 부모 슬하를 떠나 나만의 독자적인 가정을 꾸리는 것을 주변의 압력에 못 이겨 대충 합의 하에 시작한다는 것은 ‘누가 내 인생의 주인이고, 누가 내 인생을 책임져 줄 것인가? 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줄 수 없었다.

그 때 그 시절엔 대학 졸업한 20대 중반의 과년한 자녀가 있으면 아들딸 할 것 없이 출가시키는 것이 부모들의 가장 큰 과제였다. 그래서 우리 부모님도 그 추세에 따라 결혼을 시키려고 꽤나 애를 많이 쓰셨다. 다섯 명의 딸을 2년, 3년 차로 시집을 보내고 오빠까지 결혼을 시키고 나서 내 차례가 되었을 때에는 아버지의 성화가 좀 뜸해졌다. 나는 부모님과 충돌하지 않으려고 대학 3학년 때부터 주말엔 열심히 선을 보았으나 내가 만난 모든 남자들은 뻔한 가부장적 결혼생활을 예견해 주는 사람들이었고, 그래서 나는 노처녀가 되었다.


언니들 말로는 본인들은 부모말씀 잘 듣는 효녀이고, 나는 언니들과 여동생, 그리고 오빠를 포함하여 여섯 명을 출가시킨 뒤 훵한 집안 분위기 덕을 톡톡히 본 복덩이라고 부러워하곤 했다.

17년 전 결혼관이 매우 확실하게 서 있었기 때문에 노처녀가 되는 것이 아무런 문제가 없었던 나처럼 오늘의 만혼시대를 살고 있는 많은 싱글들 역시 결혼에 대한 환상보다는 현실에 기반을 둔 뚜렷한 가치관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 생각된다. 만혼의 후배들에게 ‘적령기란 사회가 정해주는 것이 아니라 내가 결혼할 수 있는 정신적 경제적 준비가 되었을 때’라는 한 마디를 남기고 싶다.

<베로니카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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