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를 풀어쓰면 ‘기록하는 사람’이란 뜻이다.
한인사회와 주류에 일어난 크고 작은 사건과 이야기들을 보고, 듣고, 취재해 기록하는 일들을 해 왔다. 2002년에 한국일보에 입사했으니 입사 횟수만 보면 내년이면 15년째가 된다.
그동안 수많은 취재현장을 다녔다. 보람된 일도 가슴 아팠던 취재도 많았다. 살인사건으로 희생된 이의 가족, 사고로 식물인간이 된 아들의 소식을 듣고 한국에서 온 아버지, 시한부 인생을 살았던 세 살배기 아기와 그 부모의 인터뷰까지…….
특히 죽어가는 아들을 바라보던 아버지, 교통사고로 함께 있던 남편은 사망하고 살아난 70대 아내, 공사장에 놀러왔다 사고를 당해 숨진 이의 가족 등은 아직도 눈에 밟힌다. 당시 “왜 이런 걸 취재하느냐. 당신은 우리가 괴로운 게 안보이냐. 피도 눈물도 없느냐” 이렇듯 인터뷰하면서 쫓겨나기도 하고 심적으로 힘들어 괴로워했던 적도 많았다. 하지만 내 직업은 한인사회에서 일어난 수많은 일들을 기록하는 기자다. 때론 “고맙다”, “잘했다”는 칭찬도 받고, 자신이나 단체가 저지른 잘못에 대한 비판 글을 썼다며 욕도 얻어먹는다. 그래도 쓴 글에 항상 떳떳했고, 기자라는 자긍심으로 이 일을 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 기자라는 자긍심과 북가주 한인기자 전체를 무시하는 일이 벌어졌다. ‘재미한인언론인협회’라는 단체가 두 달 여전 생겨났다. 그 협회를 만든 장본인은 커뮤니티 사이트를 운영하는 운영자다. 한인사회에서 일어난 극히 일부분의 행사를 사이트에 실었다고 해서 언론이라고 할 수 없다. 불러주는 행사에 찾아가서 사진 몇 장 실어주고 글 몇 자 쓴다고 언론사고 기자는 아니다. 만약 그렇다면 자신의 홈페이지에 행사 사진을 올리는 모든 사람들이 기자고 언론사란 말인가. 기자라는 책임감과 그에 따른 중압감, 무게감은 그렇듯 가볍게 사용될 수 없다.
또한 이 지역 언론사 기자들이 회원으로 가입하지 않았는데 마치 모두가 소속돼 있는 듯한 ‘재미한인언론인협회’라는 이름을 사용했다. 다시 말해 (규모로 봐서 비교대상은 될 순 없지만 편의를 위해) 포탈사이트 ‘야후’, ‘네이버’가 언론인가. 이건 기본 상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이트가 언론이라고 주장하면서 한인언론인협회를 만들었다. 이건 마치 오클랜드에 살지도 않는 사람이 오클랜드 한인회를, 그것도 홀로 만든 격이다.
그리고 첫 행사가 정치인들을 초청한 ‘상주기’였다. 수상자 중 한명은 SF 기림비 건립에 8명의 시의원과 함께 공동제안자로 참여했고, 이를 리드한 에릭 마 시의원이었다. 기자가 기림비 관련 기사만 쓴 게 9-10번은 될 정도로 마 의원 주재의 시청 모임에도 찾아다니고, 차이나타운 언덕길도 뻔질나게 돌아다녔다. 기림비를 주도한 중국단체 관계자의 인터뷰를 싣기도 했다. ‘커뮤니티 리더상’이라는 거창한 이름의 상을 주면서 기자가 쓴 기림비 내용 말고 얼마만큼 더 알고 있는지 묻고 싶다.
한인언론이라는 이름으로 상을 주는 것 보다 더 놀라운 건 시작한지 얼마 안 되는 단체가 미디어협회(해당 협회 회장이 운영하는 잡지사 한 개만 포함돼 있음)라는 단체와 통합을 목표로 만들어졌다는 데 있다. 이는 이들이 공공연히 말해 알고 있는 사실이다.
만들자마자 통합할 단체를 왜 만들며, ‘재미한인언론인협회’라는 이름이 그렇게 가벼운지 혼자 동의 없이 막 해도 될 만큼 기자들이 우스운지 알고 싶다. 이런 행사 관련 말고 한번이라도 치열하게 기사를 찾아 취재하고, 눈물도 흘려보고, 몇날 며칠을 잠을 설치면서 기사 때문에 고민해 봤는지 묻고 싶다. 한인기자와 언론을 대표한다는 그 이름에 걸맞을 정도로 치열하게 기사를 써봤냐는 말이다.
이 한마디는 꼭 하고 싶다 “난 해봤고, 써봤다” 그리고 우리 한인기자연합회 기자들도 기사를 쓰기 위해 지금 이 순간 어디선가 묵묵히 최선을 다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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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