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아마추어가 보는 미국역사 (79 )알래스카 구입

2015-11-20 (금) <조태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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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전쟁이나 링컨과는 직접적인 관계는 없지만 남북전쟁이 끝나고 링컨 이 암살당한 1865년으로부터 2년 후인 1867년에 미국이 러시아로 부터 알래스카를 구입하는 역사상 중대한 일이 있었다. 신생 미국은 유럽열강들의 위협 속에서 몸조심 해가면서 버텨야 했지만 가끔은 그 나라들의 불화 덕택에 횡재를 한 적도 몇 번 있었다. 국토를 하룻밤 사이에 두 배로 늘려준 루이지애나 영토구입, 스페인에게서 거의 뻿다시피 사들인 캘리포니아 텍사스와 남단의 여러 주들, 역시 거저 사들인 셈인 플로리다, 훗날의 필리핀(Philippines) 구입 등이 그런 예들이라고 할 수 있다.

미국이 또한번 횡재한 얘기를 해보고자 한다.
러시아가 흑해에 부동항을 마련하고 중동지역에 영향력을 늘려보려고 Ottoman 제국과 티격거리다가 시작된 1853~1856년까지 계속된 크리미아전쟁에서 영불연합국에게 패전하자 러시아는 국고가 탕진되었고 Rothschild 등 외국의 금융가들에게 갚아야할 빚이 엄청나게 늘어났었다. 알래스카는 1만여년 전부터 언어들이 서로 다른 원주민들이 살아오던 까닭에 지금도 공용어가 영어와 28개의 원주민 언어라고 한다.

영국, 스페인인들의 방문과 단기적인 정착이 있었으나 1648년부터는 러시아가 소수의 인원들을 보내어서 정착을 시도하고 세계 최양질의 물개털가죽 (otter 와seal) 을 사냥하고 수집하는 기지로 개발하였으나, 기지 유지비용이 너무 많이 들어서 타산이 맞지않은 곳이었다. 백인들과의 접촉이 시작되면서 천연두가 전염되어 1830년 경에는 알래스카 원주민들 절반이 사망하였다고 한다. ‘지킬 값어치가 없는 얼음땅’이라고 생각하였다고도 했다. 1860년대에 영국은 알래스카와 바로 붙어있는 British Columbia 를 정복하고 캐나다로 합병시킬계획을 추진 중이어서 러시아는 영국을 위협적으로 느끼기 시작하였다.


러시아 는 크리미아전쟁에서 패전한 후에는 장차 영국과 다시 싸우게될 지도 모르고 까딱하면 알래스카 를 영국에게 뺏길런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러시아 는 알래스카를 팔기로 결정하고 내심 경합이 붙어줄 것을 기대해서 영국과 미국에게 1858년부터 판매교섭을 시작하였다. 그러나 영국은 알래스카 구입에 별로 관심을 갖지 않았었으며 미국은 국내의 불화와 뒤따른 남북전쟁으로 눈코 뜰 사이가 없었다. 후일 알려진 소문에 의하면 러시아는 알래스카 판매를 위하여 미 하원의 실력자들에게 뇌물을 주었다고도 한다.

결국 미국은 남북전쟁이 끝난 후에 상원의 실권세력자이던 Charles Sumner 의원의 후원과 국무장관 William Seward 의 주선으로 1867년 3월30일에 알래스카 를 구입하였다. 구입을 반대한 언론들로부터 알래스카가 Seward’s folly (봉 잡히기), Seward’s ice box, Garden of Polar Bears 라고 비웃음을 받았으나 러시아 의 태평양권으로 진출을 억제하고 북미대륙에 영토를 늘여가는 영국을 저지하기 위해서 알래스카를 구입하는 것이 좋다고 찬성하는 쪽이 더 많았다고 한다.

미상원은 알래스카 구입 비준안을 37대2로 통과시켰다.지금까지도 경제학자들 간에 알래스카 구입이 “봉 잡힌것이었느냐” 아니면 “횡재한 것이었느냐”에 대한 이론이 분분하다. 아래 적힌 명세서를 보고 독자들께서도 손익계산을 한번 해보시기 바란다. 그러나 정확한 숫자로 계산되기 어려운 국제정치 전략상의 손익도 참고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알래스카 는 Department of 알래스카, 알래스카 District 등 여러 가지 형태의 미국영토로 존속해 오다가 1959년에 49번째의 주로 승격했다.

미국은 텍사스의 두 배가 넘는 땅덩어리 663,268 평방마일 (1,717,856 평방 km) 인 알래스카를 720만 달러 (Wikipedia 의추산으로 2015년 돈으로는 1억2천백만 달러) 에 샀는데 1 에이커 당 2센트씩 준 것이었다. 1억2천백만 달러가 많아 보이기는 하지만 참고로 앞으로 뉴욕주의 태판지 브릿지(Tappan Zee Bridge)를 새로 건설하는데 160억달러가 들것이라는 것과 지금 구상 중이라는 뉴욕시와 뉴저지를 연결하는 새 철도 터널이 200억 달러가 들 것이라는것 등과 비교해 볼 필요가 있다.

알래스카 는 “Alyeska” 라는 러시아 가 어원이라고 하는데 Great Land 라는 의미라고 한다. 알래스카 가 만일 독립국가라면 전세계에서 국토가 알래스카 보다 더 큰 나라는 18개 국가밖에 없다고 한다. 알래스카 해안의 총 길이는 3만4천 마일로써 미국본토의 총 해안 길이보다 더 길다. 알래스카에 속하는 바다까지 포함하면 미국의 가장 큰 주들인 텍사스, 캘리포니아, 몬태나 주들을 합한 면적보다 더 넓고 미국의 작은 주들 22개를 합한 면적보다도 더 넓다. 해안의 간만의 차가 35 피트 (10.7 미터) 가 되며 주 내에 호수가 3백만 개가 있으며 수력 발전을 할 수 있는 데가 여러 군데 있다고 한다.

세계에서 세 번째, 북미에서 최고봉인 Denali 산이 있는 Denali 국립공원은 1917-2015 사이에는 전대통령의 이름을 따서 Mt. McKinley 로 불리었으나 2015년 8월에 원명대로 Denali 로 개명되었는데 넓이가 매사추세츠 주와 같고 높이는 20,310 피트 (6,191미터) 인데 일 년에 40만 명이 넘는 관광객이 찾아오는 잘 개발된 관광지이다. 전 세계의 빙하 20만개 중 그 절반이 알래스카에 있다고 한다.

1998년도에 주 면적의 65%가 연방정부 소유였고, 개인 소유지는 1% 이었으며 나머지는 주정부와 원주민들의 소유라고 한다. 2014년 통계에 의하면 인구는 736,732 명으로 그 절반이 앵커리지 주변에 산다. 미국에서 인구밀도가 가장 낮은 주이며 미국 주들 중에서 인구가 제일 적기로는 네 번째가 된다고 한다. 알래스카 남부해안 쪽은 비교적 기후가 온화하고 비도 많이와서 일년에 100일정도 농사를 지을 수가 있다. 1915년에는 화씨 101도를 기록했던 지역도 있었지만 내륙의 제일 추운 곳은 1971년에 화씨 영하 80도까지 내려갔던 적도 있다고 한다.

베링해협을 사이에 두고 러시아 와는3마일밖에 떨어지지않은 알래스카의 하단에 Aleutian 열도가 있는데 그중 두 개의 섬을 2차대전 중에 일본이 일 년간 점령해서 미국 영토 중 드물게 외국에 점령 당했던 곳이었다. 외부와 도로로 전혀 연결이 되지 않은 촌락들도 많으며 수도인 Juneau 도 외부와는 배나 비행기로만 연결이 되어 있다. 어떤 소도시들은 철도로만 연결된 곳도 있으며 과음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도시전체에 금주령이 시행되는 곳도 많다고 하며 성범죄률이 높다고 한다.

고등학교 졸업이상의 고학력자들이 미국 본토로 나가서 돌아오지않아 brain drain 이 있다고 하는데, oil 생산에서 나오는 수입이 많아서 주정부 예산의 상당부분을 oil 수입으로 충당할 뿐만 아니라 주민 평균소득이 높은 편이며 소득세를 폐지했고 , 12개월이상 거주해온 주민들에게 배당을 준다. Oil 에서 받아들이는 액수 중 3% 는 자본금으로 저축하며 5%는 주민들에게 배당한다. 알래스카에는 천주교인이 가장 많은데 주민 중 교회에 등록한 사람의 비율이 미국에서 가장 낮다고 한다.

알래스카에는 석유, 천연개스, 석탄, 수산물 (미국 총어획량의 60%), 산림자원, 금등의 여러 가지 광물자원, 관광자원등이 본격적인 투자와 개발을 기다리고 있다. 지리적 위치 때문에 군사기지로서의 가치도 크다고 생각한다. 알에서 부화된 후 강에서 몇 달 동안 에 작은 꽁치만큼 자란 후 5~6년간 태평양을 돌아다니며 큰 성어가 된 후 고향인 알래스카로 돌아와 산란 후 잡히는 신기한 물고기 연어를 비롯하여 수산물들의 엄청난 보고이다. 금 매장량도 상당했던 모양으로 1890년대말 한때는 알래스카 Gold Rush가 있었으며 그때 금광이 있었던 산꼭대기까지 철도가 건설되어 지금은 관광열차로 쓰이는 곳도 있고, 냉동공장을 가진 현대식 어선들이 등장하기 전까지 가동되었던 수산물 통조림공장들이 여러 군데 폐쇄된 채 남아있다.

그러나 아무래도 가장 유명한 것은 2008년에 공화당 존 매케인 대통령후보의 부통령후보로써 기고만장했던 여장부 사라 페일린 전 주지사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녀는 “요즘 읽고있는 책이나 정기간행물의 이름이 무엇입니까?” 라는 질문에 대답을 못했을 정도의 인물이었는데 공화당 내에서 온건파로 분류되고있던 존 매케인이 당내의 극보수파들의 지지를 받기 위해서 부통령후보로 지명했던 사람이었다.

<<조태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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