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여성의 창] 반 팔십의 변화

2015-11-11 (수) 04:14:01 정윤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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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40에 많은 변화가 있었다. 세상이 변하고 있지만 빠른 변화를 따라잡기는 자신이 너무 느렸다. 난 어떻게 변하는지 궁금했다.

온 세상을 다 가졌다고 착각한 때가 있었다. 20대 때 뭐든 다 할 수 있었고 열심히 일했다. 호기로웠으나 할 수 있는 것은 몇 안되었다. 30대가 되어 여전히 바빴지만 20대의 패기와 열정보다는 안정을 원했다.

안정적인 삶을 원했으나 그런 삶은 아니었다. 집도 없었고 차도 없었다. 아이가 3살이 되었을 때도 아이를 안고 유모차, 아이 가방까지 들고 버스와 전철을 탔다. 경제적인 풍요로움도 없었고 책 한권 읽을 만한 정신적인 여유도 없었다.


30대 후반 미국으로 오게 되면서 회사를 그만두었다. 30대 후반 조기 은퇴한 셈이다. 그동안 멀리했던 가사와 아이 교육은 나를 초보주부로 만들었다. 회사 초년 시절처럼 모든 걸 다시 배우는 느낌으로 제 2의 인생을 살고 있다.

가끔 방황의 시기도 겪는다. 다시 회사로 돌아오라는 이전 보스의 연락에도 흔들리고 이제야 영어로 말하기 시작한 아들이 아직 곁에 있어달라는 소리에 흔들린다.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하는 친구 말에 흔들리고 정착하기 위해 집을 사야 하지 않을까 하는 내마음에 흔들린다. 제2의 질풍노도의 시기 같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고 반항하고 싶지만 몸은 빨리 순응하는 눈치다. 10년을 기준으로 몸이 급변한다고 하는데 개미허리였던 허리는 사라지고 투실한 몸매로 변했고 손발은 얼음처럼 차가워졌다. 비가 오는 날이면 모든 관절에서 쑤신다고 신호를 보낸다.

배우들만큼 어려지길 원하는 것은 아니다. 몸은 느리게 반응해줬으면 했는데 아쉽다.
환경이 바뀌면서 생각도 바뀌었다. 생각의 중심은 직장에서 가정이 되었다. 일 중심, 성과 중심적이었던 생각은 아이에겐 이런 생각을 절대 주입할 수 없음을 배웠다.

이전에 중요했던 일은 그렇게 중요한 일들이 아니었다. 불혹의 나이에 변화가 얼마나 많은데 흔들리지 않을 수 있을까?

흔들릴 수 있지만, 생각이 바뀐 부분은 유혹에도 의연하게 흔들리게 된 점이다.

남은 반 팔십 세에도 나는 변하겠지.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길 바란다

<정윤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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