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 모레면 시어머님 생신이다. 먼거리에 산다는 핑계로 한국과 미국, 아주 가끔 전화 드리게 되니 참 불효다. 근데 문제는 우리 어머님과의 대화가 나를 항상 기쁘게 한다는 것이다.
전화는 주로 이렇게 시작된다. “어머니, 아이고 오랫만이여요? 잘 지내시죠?” “응 우리는 잘 지내, 너희는 별고없지” 소프라노 하이톤으로 밝은 목소리로 받으신다. 그럼에도 늘 마음 한켠에 미국에서 어렵게 공부하는 우리를 못 도와주셨다는 미안함이 배어있으시다.
그러면서도 참 밝은 목소리는 나의 하루를 신나게 한다. 아버님이 몇년 전부터 몸이 좀 불편하신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번도 넋두리하시는 걸 못봤다. 한번도… 세상엔 천사 며느리도 천사 시어머니도 없다.
그러나 시간이 들어가면서 가족이 되어간다는 건 이런 거 같다. 점점 더 상대방이 이해되어가고 고맙고 하는 것. 신혼초 때보다 훨씬 나아지는 거 20년의 세월이 그냥 가기만 한 건 아닌 거 같다.
한국에 있을 때도 참 효도하지는 못한 것 같다. 명절때나 간신히 가면 어머니는 한상을 차려놓고 기다리신다. 장어국, 그 맛이 일품이고 그립다. 우리 어머님은 사람을 참 편하게 해주신다.
삐쩍 마른 남편을 둔 나에게 너라도 살이 좀 있어서 좋다고 하신다. 게다가 신혼초에 “니 남편은 워낙 말랐으니 막 살찌게 할려고 애쓰지 마라.” 내 맘을 편하게 하신 말씀이었다. 우리 어머니는 그런 지혜가 있으신 분이다.
많은 사람이 가족 구성원을 바꾸려다 지친다. 그리고 그 상대방은 변화되지 않는다. 얼마나 많은 상처의 가족사가 있는가? 변화는 본인의 것이라는 것을 알고 계신 지혜로우신 분이시다.
그걸 닮고 싶다. 12년 전인가 미국에 오셔셔 내가 운전하고 여기저기를 모시고 다녔을 때, 그래봤자 동네 그로서리나 맥도날드였는데 참 행복하게 생각하셨다. 나의 운전 실력을 감탄한 유일한 지구상의 인물!
그때 이사를 했는데 어머님이 내가 한 박스를 채우는 걸 보며 넌 나가서 애들 데리고 놀다오라고 하셨다. 나는 무슨 말인지 모르고 밖에 나가 실컷 놀다오니 어머니께서 온 집의 이사짐을 다 싸시고 부엌용품만 조금 남겨놓으셨다.
나는 한 박스에 나머지 부엌용품을 쌓았다. 어머니 말씀 “장하다! 내 며느리” 아직도 해맑은 어머니 소리가 귓가에 쟁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