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여성의 창] 이 진 ㅣ 나다운 나

2015-10-26 (월)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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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답지 않게 왜 이래?”

드라마 속 주인공은 늘 상대방에게 이렇게 질문을 했다. “나다운 게 뭔데?”라며 반격하는 유치한 드라마의 법칙은 아직도 계속 중이다. 이 유치한 대사가 내 생을 주름잡으리라는 생각을 20대 30대에서는 못해봤다.

그런데 그 ‘나다운 나’에 관한 고민을 한동안 했다. 학교 때 나는 영어 과목을 싫어했다. 언어의 교육 과정상 어쩔 수 없는 무작정한 암기가 싫었고, 수업시간에 당장 표가 나는 단어시험이 귀찮았다.


줄줄이 책을 읽게 시키면 발음에 실수라도 할까 봐 식은땀이 났고 또 실수할 때 별 뜻 없이 웃음에 동참하는 아이들을 쉬 용서하지 못했다. 그놈의 자존심 때문에 영어는 늘 싫은 과목이었다. 반면 국어 시간은 달랐다.

어릴 때부터 하루 한 권의 책을 실천하던 나는 누구보다 풍부하게 묘사를 할 수 있었고, 그 누구보다 다양하게 은유할 수 있었기에 국어로 영어의 부족함을 이기려고 더 악착같았다.

그런데 그 모든 바람과 실천을 뒤로한 채 나는 사회생활을 시작한 이후의 반을 영어를 주로 사용하는 곳에서 보내고 있게 되었다. 재치가 넘치는 유머도, 순발력 있는 말 대응도 모자란 이 미국땅에서 말이다.

얼굴을 보며 대화하는 미국에서의 비즈니스는 짧으면 짧은 대로 해결해보는데 전화통화는 아직도 영 자신이 없으니 참 딱하다.

상대방도 나도 서로의 의견을 한정된 단어로 표현하다 보니 전달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그런저런 이유로 나의 미국생활 10년은 방황과 갈등의 시간이었다. 마흔 살이 시작되던 수년 전에는 말 못할 우울감도 있어 밤잠을 설치기도 했다.

그때 또 일일드라마처럼 가벼운 인생의 법칙 ‘나다운 나’에 잠시 마음을 돌려 기나긴 밤을 보내기도 했다. ‘잘하는 것’, ‘재능은 없으나 하고 싶은 것’, ‘재능은 있으나 하기 싫은 것’, ‘재능이 없는 것’의 list를 각각 쓰기 시작했다.

한 항목마다 20개를 목표로 써보고 지우고 순서를 바꾸며 수개월 동안 고민했다. 거기서 나온 결론이 집이었다. 어릴 때부터 망치, 못, 드라이버 등 연장통을 가지고 노는 것을 바비인형놀이보다 좋아했다.


친구 집에 놀러 가도 집의 구조에 관심이 많아 구경에 시간 가는 줄 몰랐는데 질리는 법이 없었다. 그리하여 시작된 진로가 집이다.

집에 관한 일을 하면서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 좋아 미쳐 일하는 사람을 이길 수 없다는 말의 실체를 알게 되었다. ‘나다운 나’의 화두가 슬슬 올라오는 누군가가 있다면 솔직한 마음의 소리를 듣도록 권하고 싶다.

그 항목을 만들어 미치게 좋은 일을 찾으라고 말하고 싶다. 하고 싶은 말과 할 수 있는 말의 중간에서도 삶이 즐겁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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