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여성의 창] 티나 김 l 친절

2015-10-08 (목)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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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생활 초기 어느 겨울 늦은 밤, 강정 재료의 가격 조사를 위해 세이프웨이에 들렸을 때다. 중년의 흑인 남성이 Nut제품을 꼼꼼히 살피며 이것 저것 바구니 가득 담고 있었다. 저 사람은 Nut를 참 좋아하는구나. 저이는 우리 강정을 어떻게 평가할까? 그에게 우리 강정을 먹여 보고 싶었다. 궁금해서다. 한국에서 생면부지의 이방인이 음식을 권하면 나는 그걸 먹을 수 있을까? 싶었다. 될 법한 일인가? 그러나 모르면 용감해지는 법! 그에게 내 강정맛의 평가를 부탁하기로 마음먹었다. 막막한 이국생활에 뭔가 알아내야 한다는 간절함이 나를 움직였던 것 같다. 입구에서 10여분을 기다리니 그가 나왔다. 그에게 다가갔다. 미숙한 영어로 “난 한국에서 미국온 지 2개월 정도 됐고 전통요리하는 사람이다 내가 만든 한국전통쿠키를 평가해 줄 수 있냐”고 부탁을 했다.

반응이 어떨까? 봉변을 당하는 건 아닌지 가슴이 쿵당거렸다. 그런데 의외로 친절하게 응해 주었다. 차에서 포장해 둔 박스를 가져와 매장 입구에 선 채 시식을 권했다. 그 광경은 지금 생각해도 아찔하다.

7종류의 강정을 권했다. 호두강정은 맛있다 한다. 아몬드 땅콩 해바라기씨 강정은 괜찮다 했다. 깨강정과 호박씨 강정은 맛을 잘 모르겠다고 고개를 갸우뚱한다. 그의 진지한 모습이 우습기까지 했다.


잣강정에 대한 반응이 의외였다. 가장 귀히 여기는 잣강정을 비누 씹는 것 같아 별로라고 했다. 비누맛이라니! 정말 당황스럽다. 그러나 나에겐 좋은 경험이 됐다.

직업을 물으니 CPA란다. 명함을 받아 집에 와 인터넷을 검색해 보고 잠깐 멍해졌다. SF에 본사를 둔 큰 플랜트회사의 CFO고, PhD 소유자였다. 길가에서 참 어이없는 짓을 했구나 싶었다. 어리숙한 이방인의 무리한 부탁을 이해해 준 그가 참 고맙다. 내 남편도 내게 그렇게까지 자상했을까? 그의 명함은 아직껏 잘 간직하고 있다.

“한국음식에 익숙한 분들께 굳이 내 요리를 권할 필요가 있나, 외국인의 평가가 어떤가? 그점이 중요하지”라는 생각을 간혹한다. 동시에 벅차단 느낌이 든다. 낯선사람, 낯선언어 낯선문화 모든게 부담이다. 그럴때면 영어가 서툰 나를 편히 대해준 그 중년의 흑인남성을 떠올리며 스스로를 위로한다. 낯선 이국에서 그의 작은 친절은 나에게 지금도 큰 용기가 되어준다.

도전은 아름답다 했다. 목표를 세우고 조금씩 나아가는 것도 내 삶의 소중한 일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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