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덕중 UMC 은퇴 목사, 영문 자전 에세이‘3일의 여정’발간
한인 은퇴 목사 부부가 영어로 거의 동시에 자전적 에세이를 펴내 화제다.
원덕중 목사의 ‘3일의 여정(Three Day Journey)’이 출간된 것은 지난 봄. ‘12살 한국전 난민소년의 이야기’라는 부제를 달았다. 부인 원인숙 사모가 쓴 ‘은하수(The Milky Way)’는 9월에 나왔다. 한복을 곱게 입고 노래하는 원 사모의 사진을 배경으로 한 표지에는 ‘푸른 하늘 은하수’라고 한글로 적혀 있다.
“한인 2, 3세 젊은이들에게 내가 겪은 한국 전쟁을 들려주고 싶었어요. 한국을 잘 모르는 미국인들에게도 도움이 되겠죠. 전쟁의 상처, 이산가족의 아픔, 분단 국가의 현실을 나의 생애를 통해 전달하려 했습니다.”
원 목사가 후세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에는 깊은 회한이 담겨 있다. “3일만 피해 있으면 다시 돌아올 수 있다”고 했던 UN 사령부의 말을 믿고 피난을 떠났었다. 그 약속은 그러나 지금까지 지켜지지 않고 있다. 1990년 북한을 방문할 기회를 얻어 잠시 다녀온 것을 제외하고는. 원 목사의 메시지는 어쩌면 “가족은 어떤 일이 있어도 헤어지면 안 된다”는 호소인지 모른다.
평남 성천에서 출생한 그는 1950년 6.25가 발발한 후 60여일을 걸어 남으로 내려왔다. 어머니와 다섯 명의 형제들은 북에 남겨둔 채였다. 졸지에 이산 가족이 돼버린 당혹스런 상황 속에서도 소년은 대학(연세대 정외과)을 졸업했고, 군복무를 했고, 1965년 미국 유학길에 오르게 됐다. 메릴랜드대학에서 농업경제학을 전공으로 택했다. 한국의 농업을 진흥시키겠다는 생각이었다. 메릴랜드대에서 박사 학위도 마친 그는 벡텔에 엔지니어로 취직했다가 3명의 동업자들과 함께 ‘어플라이드 시스템스 인스티튜트(ASI)’란 회사를 창업해 경영하기에 이른다. 돈도 많이 벌었다.
북한 방문은 원 목사의 삶의 방향을 크게 틀어놓는 계기가 됐다. 어머니는 이미 돌아가셨고 살아계신 세 분의 누님을 만났지만 자신이 해줄 수 있는 것은 별로 없었다.
“북에서 돌아온 후 네가 지금 뭘 하고 있느냐 라는 소리가 계속 귓전에 들려왔어요. 1년 반 동안 지속됐죠. 미쳐가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에 의사를 만나기도 했습니다.”
그것은 진정한 안식을 찾아 헤매는 영혼의 목소리였다. 새로운 인생을 살라는 재촉이기도 했다.
워싱턴의 웨슬리 신학교, 뉴욕 북부의 로체스터 콜게이트 신학교를 졸업하고 1997년 UMC 목사가 된 그는 시골 백인교회들을 10년간 목회했다. 그의 말을 빌자면 “인생의 황금기”였다. 매일 심방하고, 성경공부하고, 성가대를 조직하고… 성도를 돌보는 일에 올인하는 원 목사를 성도들은 매우 좋아했다. 2004년 은퇴한 원 목사는 은티 감리교 목회자들이 모여사는 남가주 소재 ‘베이커 홈’에 거주하고 있다.
“인생은 쉽지 않습니다. 그럴수록 창조주를 의지해야겠죠. 그리고 열심히 살아야 해요.” 원 목사가 젊은이들에게 주는 결론적인 메시지다.
남편과 비슷하게 11살 때 6.25를 겪으며 무진 고생을 했지만 사랑하는 음악을 통해 미국 유학을 오고 원 목사를 워싱턴에서 다시 만나 함께 목회의 길을 걷게 된 원인숙 사모가 주는 교훈도 비슷하다. “마태복음 7장은 구하라고 명령합니다. 노력하면 안 될게 없어요.”
굳이 출판기념회라는 말을 쓰고 싶지 않다는 원 목사 부부의 영문 에세이집 출간 축하 모임은 4일(일) 오후 5시 애난데일 소재 펠리스 식당에서 열린다.
문의 (626)665-2445, (626)715-2022
<이병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