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여성의 창] 김은경 ㅣ 럭비공을 골프공처럼

2015-09-11 (금)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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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도 럭비를 해본 적이 없다. 한번도 골프를 쳐본 적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은 공 얘기를 해보련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그렇기에 스파크, 참신한 아이디어라는 뜻의 럭비공이라는 별명을 지닌 적이 있었다. 예상 불가 자유부인. 그러나 그렇다고 도덕적인 선을 넘거나 큰 문제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단지 반복되는 매일의 일상이 참 힘들다는 것이다.

고등학교때가 가장 힘들었던 것 같다. 그래서 책상을 흰 도화지로 덮고 그 위에 시를 쓰거나 뭔가 그 일반적인 틀을 깨기 위해 발버둥치며 살았던 것 같다. 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하루의 이벤트가 없으면 힘든.... 대학 때도 국문과를 다녔는데 야생조류연구회라는 서클에 가입했다. 당시는 서클이라고 했던 것 같다. 뭔가 기웃거렸던 곳은 폴라리스 라는 별을 관찰하는 곳 스킨스쿠버 하는 서클 등등 뭔가 색다른, 전공과는 다른 것을 선택하려고 했다.

그 당시엔 그것이 더 끌리고 매력있어 보였다. 그러나 결론으로 새를 쫓아다니는 야생조류연구회를 선택했다. 미국으로 유학올 때도 보통 한국요리책이나 미국요리책을 가져오는 상식적인 행동을 못하고 호텔요리책 그런 책을 사가지고 왔다. 가난한 유학생 주제에 말이다.


물론 한번도 사용한 적 없다. 아흐, 이런 내가 성격 검사를 해보면 장식품은 챙기나 생필품은 잘 잊는 정도로 나온다. 비생활적이라고 해야 하나, 그런 럭비공 같은 나를 세상은 내버려두지 않았다.

작아져야 했다. 색깔은 흰색으로. 골프공이 되어야 했다. 쭉쭉 따라갈 선이 필요했고 쏙 들어가 하나도 안 보일 구멍이 필요했다. 골프공이 된 거다. 어느 순간부터 내가 안 보이면 편안함을 느끼게 됐다. 세상은 넓은 들판인 듯 보였지만 나의 길은 예측되고 예상된 길로만 가야 했다.

그게 인생인 것 같다! 내 볼과는 다른 용도로 쓰이는… 그러기에 내가 작아지기도 하고 단단해지기도 하고 예측가능해지기도 하고 심지어 하애지기까지 하니 말이다. 나는 골프공 안에서 자유하는 법을 배워간다. 골프공 안에서 뛰고 달리고 숨는다. 작지만 큰 공이 되어본다. 오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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