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은이는 시각장애인이다. 이 소녀에게는 남다른 재능이 있다. 부모는 버려진 피아노가 아까워 집에 들여놨다. 딸은 홀로 몸을 움직일 수 있을 때부터 피아노 건반을 두드렸다. 악보를 볼 수 없는 눈, 예은이는 오직 귀로 듣고 피아노를 쳤다. 엄마 정순씨와 아빠 장주씨는 딸의 모습을 촬영해 인터넷에 올렸다. 세상은 예은이를 천재로 불렀고, TV 프로그램에도 출연했다. 피아노를 본 적 없는 아이가 피아노를 다루는 모습 덕에 소녀는 유명해졌다. 이후 몇 년, 예은이는 어떻게 살고 있을까. 예은이의 삶은 달라졌을까. 다큐멘터리 영화 ‘기적의 피아노’(감독 임성구)는 바로 그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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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의 피아노’는 피아노에 천재적인 재능을 가진 시각장애 소녀의 이야기가 아니다. 장애를 소재로 한 최루성 멜로 다큐멘터리는 더욱 아니다. 이 영화는 어쩔 수 없는 이유로 다른 아이들보다 천천히 조심스럽게 세상을 향해 나아가야 하는 한 소녀의 고군분투기다. 이영화가 예은이의 환상적인 연주가 아닌 그의 연습 과정을 반복해서 보여주는 건 그런 이유다. 장애가 주는 슬픔과 좌절을 보여주는 대신, 스틱을 사용해 홀로 한 발씩 목표 지점을 향해 발을 내딛는 예은이를 보여주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임성구 감독의 연출은 그 자체로 뛰어난 것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기적의 피아노’는 목표가 명확하고, 목표에 도달하는 방식이 정직하며, 태도가 진솔하다는 점에서 ‘좋은’ 연출의 영화다. 이 다큐멘터리는 사건을 다루지 않는다. 일례로 ‘기적의 피아노’에는 세 번의 큰 사건(콩쿨 2회, 연주회 1회)이 있지만, 영화가 집중하는 건 사건 전과 후의 예은이의 모습이다. 임성구 감독은 관객이 예은이를 쉽게 연민하는 게 아니라 응원하기를 바라기 때문에 건반을 정확하게 누르려고 노력하는 손을, 연주가 맘대로 되지 않아 입을 다물고 눈물을 흘리는 얼굴을, 피아노를 치며 행복해하는 웃음소리를 카메라에 담는다. 결국 ‘기적의 피아노’는 결과가 아닌 과정에서 예은이가 울고 웃는 모습을 통해 이 어린 소녀가 씩씩하게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음을, 커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 다큐멘터리가 사려 깊은 시선을 가진 작품이라는 걸 보여주는 다른 사례는 카메라가 예은이를 담는 동시에 엄마 박정순씨 또한 앵글 안에 포함하고 있다는 점이다. 영화는 때로는 엄격하게 때로는 자애롭게 예은이를 가르치는 정순씨의 모습을 예은이가 보여주는 ‘일보 전진’에 모나지 않게 포함한다. 이 자연스러운 과정은 결국 정순씨가 연출자와의 처음이자 마지막 인터뷰에서 “믿어야죠. 제 엄마가 저를 믿어줬던 것처럼 저도 예은이를 믿어야죠"라는 대사의 감동을 극대화한다.
이 다큐멘터리를 다 보고나면 관객은 아마도 예은이의 삶을 긍정하게 될 것이다. 물론이 소녀의 하루하루는 앞으로도 이 세상과 맞부딪혀야 하는 치열한 분투기일 것이다. 하지만 예은이는 피아노라는 세상을 바라보는 자신만의 눈이 있고, 그 시선을 언제나 지지할 가족이 있다. 그러니 그저 잘 해내고 있다고 박수 치며 응원할 수밖에. 정순씨처럼 우리도 예은이를 믿는 수밖에.
<손정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