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여성의 창] 이 진 l 밥 한 숟가락의 철학

2015-08-31 (월)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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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자라던 그 시절에는 밥을 상에서 먹었다. 그땐 그랬다. 지금처럼 식탁에서 의자를 끌어당기면서 둘러앉는 게 아니라 네 귀퉁이가 있는 상이 일반적이었다. 여러 번 옻칠하여 은은한 빛이 나던 상은 조석으로 우리에게 놓였다. 예닐곱 정도의 나이부터 가정의 교육은 그렇게 밥상머리에서 시작되었다.

웃어른이 숟가락을 들기 전에는 기다려야 한다, 밥을 씹으며 이야기를 하지 마라, 반찬은 골고루 먹되 맛난 것만 계속 먹지 말고 형제와 나누어 먹어라, 젓가락질을 똑바로 하여라… 밥상머리에서 위의 것을 하나쯤은 지키지 않아서 눈물을 쏙 뺀 기억이 있다.

하지만 우리 집에서는 또 하나 특이한 밥상머리 교육이 있었다. 바로 ‘마지막 한 숟가락은 남겨라’ 였다. 음식물 쓰레기가 큰 문제가 되는 요즈음 이 무슨 말도 안 되는 교육이냐고 깜짝 놀랄 일이겠지만 그것은 우리 집 교육의 바탕이 되었다. 배가 부를 때까지 먹지 말고 배고픈 듯할 때 숟가락을 놓아 과식을 방비하라는 뜻이 첫 번째다. 또 하나는 모든 일에 있어서 밥을 먹을 때처럼 배부르기 전에 한 숟가락을 남기라고 자라면서 늘 배워왔으니 밥을 시작으로 마음을 다스리는 교육은 그렇게 시작된 것이다.


일하면서 욕심을 부려보고 싶을 때가 있었다. 최대한 이윤을 남겨 욕심을 채우고 싶을 때도 있었고, 최선이라는 명분을 내세우며 마지막까지 일을 좇을 때도 있었다. 그러나 밥 한 숟가락이 남았을 때처럼 난 마지막 순간에 의욕을 잠시 내려놓고 숨을 고른다. 그 남은 한 숟가락을 홀랑 입으로 넣고 나서 후회될 것들에 대한 생각을 해보는 것이다. 내 배를 채우기보다는 그 남은 한 숟가락이 상대방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라고 내 안에서 이야기하는 소리를 듣게 된다.

남겨진 한 숟가락을 가르치고 싶었던 어른의 마음은 내게 배려라는 마음의 중심이 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내가 간신히 남긴 밥 한 숟가락처럼 한 번의 배려가 상대방의 마음에 전달되기를 바란다. 그것은 다시 따뜻한 배려의 도미노가 되어 다른 이에게 전달되기를 바라는 의미도 내포한다. 세월이 오래 지났다. 하지만 밥상머리 교육의 한 숟가락은 내 안에서 생의 철학으로 계속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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