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소녀상 건립은 ‘외교전쟁’ 이다

2015-08-28 (금)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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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양지인’(宋襄之仁)이라는 중국고사가 있다. 송나라 양공의 인자함이란 뜻의 이 고사는 전쟁터에서 상대의 입장을 배려하다 참패를 당한 어리석음을 지적하고 있다. 전쟁이 시작되면 일단은 이기고 봐야 한다. 인의를 따지다간 자칫 자멸을 초래한다.

풀러튼 평화의 소녀상 건립이 무산되는 과정에서 LA총영사관이 보여준 태도는 소극적이다 못해 무책임하다는 지적을 피하기 힘들다. 백방으로 뛰며 소녀상 건립을 위해 노력해 온 한인 민간단체들과 달리 총영사관은 “외교적 마찰이 우려 된다”는 이유를 들어 수수방관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와 대조적으로 일본 총영사관은 총영사가 직접 풀러튼 시의회를 찾아 시장을 비롯한 관계자들을 설득하는 등 소녀상 건립을 막기 위해 총력전을 벌였다. 풀러튼 시를 회유하기 위해 상당한 당근을 제시했다는 의혹까지 나올 정도다. 결론적으로 일본은 풀러튼 소녀상 건립을 둘러싼 한인사회와의 싸움에서 완승을 거뒀다. 그동안 위안부 역사 알리기와 소녀상 건립을 위해 귀한 사재와 시간을 털어가며 애써온 한인들로서는 허탈한 결과가 아닐 수 없다.


문제는 총영사관의 이런 소극적 태도가 처음이 아니라는 것이다. 3년 전 글렌데일 소녀상 건립 때도 개입하지 않으려는 입장을 보였다. 다행히 글렌데일 소녀상은 한인들의 노력으로 세워졌다. 하지만 총영사관과 한국 외교당국이 외교 문제를 들어 계속 방관한다면 앞으로 미주 곳곳에서 추진될 위안부 역사 알리기와 소녀상 건립 사업들이 어떤 암초에 부딪힐지 보지 않아도 뻔하다.

외교는 총성 없는 전쟁이다, 세계 각국은 외교전선에서 자국의 이익과 자국민 보호를 위해 치열한 싸움을 벌이고 있다. 일본은 외교전쟁에 막대한 물질적 인적 자원을 쏟아 붓고 있다. 그리고 일정부분 성과를 거두고 있다. 한국이 일본과의 외교전에서 이기려면 지금 같은 소극적 대응으로는 힘들다.

이번 풀러튼 소녀상 건립 무산을 계기로 한국 외교당국과 총영사관은 지금까지의 대응전략을 총체적으로 재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송양지인’의 어리석음을 되풀이해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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