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여성의창] 김성희 ㅣ 영원한 딸의 자리

2015-08-26 (수) 12:00:00
크게 작게
작년에 조그만한 Tax Office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막내 딸이 대학에 간 지 1년 반이 지난 후였다. 거의 자식일에만 미쳐 살아온 내가 막상 아이들이 떠나고 나면 슬프고 무기력할 것 같았는데, 천만의 말씀이다. 오래된 빚을 다 갚은 홀가분한 기분이었다. 아이들은 고마워하면서 그렇게 다들 집을 떠나갔다.

그날을 기다린 것처럼, 나는 그때부터 내 앞의 삶을 향해 달리고 또 달렸다. 왜? 친구들은 묻는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 살아오면서 늘 마음 한구석에 자리한 단 한가지 --- 마음 제일 밑바닥을 치고 항상 올라오는 돌아가신 부모님에 대한 죄스러운 마음… 힘들어 번 돈으로 대학원까지 그것도 모자라 미국에까지 와서 교육시키신 내 부모님이 헛고생한 것 아니라고 보여주고 싶은 간절한 소망 같은 것… 살기 바쁘다는 핑계로 아무것도 해드린 것 없이 살아온 불효를 하늘에 계신 부모님께 조금이라도 갚고 싶은 마음…적어도 셋째딸이 부모님이 공부시킨 덕분에 이 나이에도 이렇게 직장을 잡아 일 잘 하고 있는 것을 보여 드리고 싶은 그 한마음으로 모든 것을 내려놓고 달리고 또 달렸다. 나이 오십둘에 맨 밑바닥에서 기고 또 기고… 죄스러운 부모님께 속죄하는 마음으로…

드디어 공부한 지식을 밑천으로 일을 하기 시작했다. 살아계셨더라면 제일 기뻐하실 우리 부모님…앞으로 이 사회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하면서 제대로 살아가는 모습을 부모님께 보여줄 수 있도록 열심히 일을 배울 것이다. 정말 이렇게 일할 기회가 와서 다행이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이후 오랫동안 아파왔던 마음의 병을 이제 치유할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내가 맡은 제일 중요한 엄마 역할 이전에 착한 딸로 인정받고픈 마음어린 셋째딸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인생은 흘려가는 게 아니라 돌아가는 것이라는 것도… 부모님이 계신 마음의 고향으로…

시집간 이후, 처음으로 부모님께 자랑스러운 딸이 되었는데 …그래서 기쁘고 또 기쁜데 그런데도 자꾸 눈물이 난다. 돌아가신 부모님께 ‘엄마 아빠 많이 죄송합니다. 열심히 살아서 누가 키운 딸이 이렇게 이 나이에도 일을 찾아 잘 사나 세상이들이 궁금하게 하여 꼭 키운 공덕에 보답하겠습니다’ 하고 약속했다. 이 나이에도 이렇게 엄마 아빠 앞에서는 그들의 딸이 될 수 있어 행복하다.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