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여성의 창] 이 진 l 왕자파스 24색

2015-08-10 (월)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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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 집이 말을 걸어온다. 상품의 가치를 높이는 마케팅, 사람의 가치를 높이는 인사관리, 기업의 가치를 높이는 위기관리 등 여러 일도 거쳤다.

그러나 집처럼 가슴을 뛰게 하는 일이 없었기에 좋아서 집에 빠졌다. 어느 집이든 문을 열고 들어가면 대번 그 집에 대한 수리견적이 나온다. 집주인이 알면 긴장을 할 일이지만 그건 나와 집이 속으로만 가지는 교감일 뿐이다.

집의 가치를 가장 손쉽게 높이는 일은 색을 바꾸는 일이다. 색이 바뀐다고 집의 가치가 높아지는 것은 아니고 그 집에 맞도록 색의 대비를 주는 것이 중요하다. 집과 색을 공부하면서 색을 사용하는데 호기를 부리지 않게 되었다.


강한 대비가 주는 묘한 불안감과 밋밋한 색의 지루함은 고객의 취향과 부합되면서 다양한 반향을 불러일으킬 수 있기에 마지막까지 고민의 끈을 놓지 못한다.

이 소극적인 갈등은 바로 ‘왕자파스 대왕 24색’ 탓이다. 1970년대에 학교에 입학하고 24색 크레용을 처음 받았다. 누군가 쓰던 몽땅 색연필이 아니라 내 온전한 왕자파스를 쓰게 되었을 때의 희열은 지금도 강렬하다.

횐색, 회색, 노랑, 귤색, 살색... 연두, 녹색, 청록, 하늘색, 파랑, 검정 순이었다. 매초롬한 24색 크래용이 화학적 냄새를 풍기며 뇌리에 안착한 기억때문인지 이민초기에 내 색감은 방향을 잃곤 했다.

고객들과 페인트색을 고르러 가면 내 눈에는 분명 하늘색 계열의 색인데 Grey 계열이란다. 또 내게는 청록색 계열이 그들에게는 고민없이 Green 계열이란다. 너무 신기해 색감표를 놓고 물으니 서양인들에게는 똑같은 대답이 나왔다.

우리의 눈은 익숙한 것을 세련되고 편안하게 느끼게 한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익숙한 색은 이민에서 온 변형된 감각일 수도 있겠다. 고객의 집을 고치고 마지막으로 색을 결정하게 될 때 내 안의 고집을 내려놓고 그 집의 성격과 환경에 동화되는 색을 위해 집중한다.

살색, 하늘색같이 주관적인 색이 아니라 아침에 부엌으로 들이치는 햇살에 좋은 색, 저녁노을이 질 때 벽난로 위로 비치는 역광에 은은함을 더하는 색을 고르게 된다.

이제 집은 휴식의 공간만이 아니라 삶의 질을 높이는 중요한 의미를 부여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지금도 왕자파스 24색은 내 인테리어 색의 근간이 됨을 부인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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