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여성의 창] 김연주 ㅣ 소도둑 키우기

2015-08-04 (화)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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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학년인 막내가 슬퍼하면서 학교에서 돌아왔다. 한국에서부터 가져온 젤리 샤프를 교실에서 잃어버렸다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흔한 귀여운 문방구류가 미국에서는 부러움의 대상이다.

특히 젤리 샤프는 모두 한 번씩 빌려 써볼 정도로 인기란다. 그 소중한 것이 한달만에 없어진 것이다.

책상 속도 찾아보고 로스트앤파운드에 나타나나 기다려도 보다가, 며칠이 지나서 엄마에게 털어놓은 것이다. 고작 20여 명 친구들을 자리별로, 성향별로, 범인 추리기를 하고 있는 막내를 보니 옛일이 생각났다.


큰 아이가 돌 무렵에는 이삼 일마다 당직이라 도우미를 썼었다. 가까이 사시던 외할머니는 식모만 4명씩 두고 살았던 시절이 있던 분인데, 그 옛날에도 작은 동전 지갑 외에는 빈몸으로 다니면서도, 동전 지갑에 녹용을 차곡차곡 넣어 훔치는 사람이 있었다며, 사람이 들면 손타기 쉬우니 조심해야 한다고 주의를 주셨다.

그럼에도 별 귀중품이 없는 집이라 크게 신경 쓰지 않았었는데, 식비가 늘기 시작했다. 우리 부부는 근무시간이 길어 집에서 식사가 없는데, 아기가 이런저런 과일을 잘 먹는다던지 갈비찜을 잘 먹는다며 도우미가 음식을 많이 했다.

그러면서 도우미의 가방이 점점 커졌다. 어느 날 어마어마한 등산 가방 가득 음식을 넣어가다 딱 걸렸다. 그 이야기를 들으신 할머니는 나를 혼내셨다. 간수를 잘못하고 훔칠 여지를 줬기 때문에 착한 사람이 나쁜 마음을 먹게 되었다는 것이다. 한 사람을 도둑으로 만들고 직장까지 잃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젤리샤프를 학교에 가져가도록 둔 내가 문제다. 친구들에게 욕심이 생기게 하고, 내 아이에게는 의심하는 마음이 생기게 하고. 만약 훔친 아이가 있다면 그 아이에게는 돌이킬 수 없는 잘못을 하게 된 것이다. 이런 설명을 아이가 알아들었는지는 모르겠다.

그래도, 웬만한 것들은 학교에 가져가지 않게 되었다. 미국에 처음 정착하면 사기를 많이 당한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 조심해야겠는데 잘할 수 있을지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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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주씨는 산부인과, 산과 전문의로 전문가 이민을 신청한 남편을 따라서 미국에 와서 전업주부로 세 아이와 깻잎을 키우고 있다. ‘모유수유, 태교보다 중요하다’라는 책의 저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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