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부모와 정서적 유대관계 결여 원인”
60대의 박모 씨는 최근 용기를 내어 상담소를 찾았다. 아들의 폭력을 더 이상 견딜 수 없어서 였다. 상습적인 폭행을 당해온 박씨는 급기야 얼마 전 30대 아들과 말다툼 도중 내동댕이쳐지면서 의식까지 잃고 응급처치까지 받아야 했다. 박씨는 “아들한테 맞고 산다는 게 부끄러워 그동안 숨겨 왔는데 사소한 폭력이 상습적으로 변해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고 털어놓았다.
최모씨 역시 툭하면 싸움을 걸어오는 20대 딸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더구나 최근에는 멱살까지 잡으며 대드는 데다 침대 밑에 식칼까지 숨겨 두는 등 갈수록 폭력적으로 변하는 딸을 더 이상 차마 지켜 볼 수 없을 지경이다. 최씨는 “딸 아이를 잡아갈까봐 경찰에 신고를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그냥 놔뒀다간 큰일이 날 것 같아 조마조마 하기만 하다”고 푸념했다.
최근들어 자녀들한테 매맞는 한인 부모들이 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뉴욕가정상담소가 3일 발표한 ‘2015년도 상반기 상담 서비스 통계 자료’에 따르면 이 기간 가정내 폭력 및 성폭력으로 인해 범죄 피해자로 분류된 상담자는 총 892명으로 집계됐다. 이 가운데 가정폭력으로 도움을 요청하는 한인 10명 중 2명은 자녀로부터 폭력에 시달리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희녕 상담 디렉터는 "자녀들의 폭력으로 상담을 하는 부모들이 가정폭력 상담 중 5~10%에서 올 들어 20%로 2배 이상 늘었다"며 "자녀들의 폭행이 늘었을 수도 있지만 폭력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해야 한다는 인식이 퍼지면서 적극적으로 신고하는 사례가 증가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폭력을 가하는 자녀들은 10대 중반부터 30대 중반까지로 혼자 고립돼 정상적인 인간관계를 맺지 못하거나 고립된 경우가 많은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폭력 유형도 신체적인 폭력 뿐 아니라 심한 욕설과 같은 언어적 폭력, 감정 폭력까지 다양했다.
상담소 측은 자녀들의 폭력은 대부분 어린 시절 부모와 충분한 정서적 유대관계를 쌓지 못한데서 비롯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 디렉터는 "상당수 이민자 부모들이 하루 종일 일에 매달리다 보니 자녀들을 보살피지 못하게 된다"며 "자녀들은 부모들이 자신을 버렸다고 생각하고 부모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거나 갈등이 있을 화난 감정을 폭력으로 표출하게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밖에 배우자가 금전적 사용을 억압하는 경제적 폭력 ▶성적학대 ▶신체적 폭력 등이 큰 비중을 차지했다. 가정상담소는 가정폭력 및 성폭력 상담 이외에도 정신건강, 알콜 중독, 자녀 교육, 주택 문제 등에 관해 386건의 상담을 실시했다.
지난해 1월 뉴욕가정상담소와 통합한 쉼터 ‘무지개의 집’은 같은 기간 가정폭력 및 성매매 피해 여성과 동반 자녀 14명에게 숙식을 제공했다. <김소영 기자> A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