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창] 양유진 l 가족이 나타났다
2015-07-29 (수) 12:00:00
아늑했던 내 공간이 비좁아지고 조용했던 일상이 북적해졌다. 4년간 두 번 밖에 한국으로 오지 않았던 딸이 서운했는지 가족들이 총 출동했다. 졸업식을 기점으로 90일간 내 공간과 시간 속으로 들어왔다. 혼자가 익숙해져가는 내게 가족이란, 엄마가 해주는 따끈따끈한 아침밥과 같다. 늘 있을 것만 같고 하루의 시작을 든든하게 해주는 것처럼.
가족들이 온다는 소식에 몸과 마음이 분주해졌다. 머무는 기간 동안 최대한 편하게, 좋은 것만 보여주고 싶은 건 어느 딸이나 다 같은 마음이 아닐까. 얼마없는 가구를 옮겨가며 공간을 만들고, 지인에게 부탁해서 차를 빌리고, 좋은 추억을 선물해 줄 여행 루트를 짜느라 정작 내 졸업식은 콩 볶아 먹듯 쌩 하니 지나가버렸다. 함께 한 날도 어느덧 절반이 지나갔다.
어릴 적 내가 엄마 손을 꼭 잡고 다닌 것처럼 이젠 엄마가 낯선 곳에서 내 손을 먼저 잡으며 길을 걷고, 하고 싶은 게 많은 동생에게 일일이 주의를 주느라 밉지 않은 잔소리꾼이 되어버렸다. 창틀 사이로 들어오는 시원한 밤바람에 10년 전 옛 이야기와 10년 후의 미래모습을 얘기하며 밤마다 도란도란 웃음꽃을 피운다. 한 방에 세 명이 옹기종기 모여 잠자리에 드는 이 순간이 언제 또 올까? 혼자 살때는 늘 빡빡하고 허기진 듯 생활했지만 가족과 함께 있으니 느슨해지고 여유도 부려본다. 살까말까 망설였던 과일도 주저없이 사게 되니 가족이 생기면 삶이 풍요로워진다는 말이 이해가 간다. 커피를 주문하면서 아이스커피 대신 콜드 커피를 달라는 동생의 실수에 웃을 일도 부쩍 많아진다.
먹는 습관도 생활 패턴도 다 다르지만 가족이라는 두 글자는 마음을 뭉클하게 한다. 남은 3주가 지나면 또다시 혼자가 된다. 남게 될 딸이 허전해 할까봐 벌써부터 엄마 마음은 걱정으로 가득하지만 괜찮다. 같이 생활하면서 나도 잊고 있었던 가족들의 닮은 습관들을 발견하게 되었고 나 혼자 힘으로 이 자리까지 오지 않았다는 걸 새삼 알게 되었다. 가족들이 떠나도 방 안에는 가족들의 사랑과 희생이 곳곳에 담겨져 있기에 나는 혼자여도 혼자가 아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