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창] 강성희 l 안방까지 들어와야 할 인문학
2015-07-28 (화) 12:00:00
주변에 인생 비바람에 취약한 안타까운 상황에 있는 가정들이 있다. 상황이 극단적으로 흐르게 된 가슴 아픈 현실을 볼 때 하늘을 향해 하늘 문 열어 의의 빗줄기 내려 주시라고 절규한다. 삶의 공허함과 정신적 압박과 칠흑같이 어두운 현실에서 돌파구를 찾지 못해 난파선처럼 좌절한 자들이다. 생각해보니 이들은 일찍이 모두 피해자 렌즈를 끼고 있었다. 성장 과정 중 가정에서 진정한 롤모델의 부재로 인해 따를 발자취를 찾지 못하였기에 자포자기하며 헤밍웨이의 독백처럼 “나의 영혼은 필라멘트가 끊어진 텅 빈 전구처럼 고독하고 어둡다” 하며 단단히 쥐고 있어야 할 소망의 줄을 놓아 버린 것이다.
누가 소망의 불빛을 비춰 주어야 하는가? 누가 무너진 인생들을 위로해 주고 대신 울어줘야 하는가? 도덕과 윤리가 땅에 떨어지고 자본주의가 쾌락을 누리는 기이한 이 세대 이 땅의 주인은 진정 누구인가? 가슴에 작은 불씨 아직 남아 있는 자가 촛불을 밝혀야 할 것이다. 마음이 가난한 자가 위로해주며 긍휼의 옹달샘 마셔본 자가 울어줘야 할 것이다. 상한 마음으로 기도하는 자가 이 땅의 주인이자 시대적 사명자인 것이다. 그러기에 이 땅의 주인은 소망 잃은 자들에게 평화와 회복을 선포하며, 무너진 틈 사이에 서서 하늘의 긍휼을 구하는 아름다운 대사이다. 이제 따듯한 용기의 책을 이들의 손에 쥐어주고 싶다.
자녀들이 속절없이 쉽게 소망을 내려놓지 않고 도전하는 운명에 응전할 수 있는 절대 성장을 포기하지 않는 희망을 키우면 좋겠다. 역경 속에서도 소나무처럼 독야청청 자라나기를 소망한다. 맛있는 요리 외에 자녀들을 무엇으로 섭생시켜야 하는가? 먼저 부모가 한 손에 신문을 다른 손에 성경을 들고 고전과 인문학으로 성장해야 할 것 같다. “역사적인 인물들은 탁월함을 습득하고 훈련하기 위해 인문학의 도움을 받았다. 이런 공부는 풍요로운 삶을 가져다 주며 우리가 역경 속에 처해있을 때, 마음의 안식과 평화를 준다.” 추방 위험에 처한 시인 아르키아스를 위해 변론하는 로마의 키케로의 인문학 정의처럼 우선 부모인 내가 깊어지고 넓어져야겠다.
“아들아, 너는 용기와 진정한 노고는 나에게서 배우고, 행운은 다른 사람에게서 배우도록 하라.” 로마의 새로운 역사를 시작한 아이네아스가 용기와 탁월함과 숭고한 사명의 발자취를 아들에게 남겨주듯이 빛난 발자취 나도 남겨야 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