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창] 윤아영 ㅣ영어가 좋을 때
2015-07-23 (목) 12:00:00
미국에 오기 전에는 주변 사람들이 ‘와, 미국 가면 영어 제대로 배워 오겠네’ 하더니, 1년이 다 되어가는 요즘은 ‘미국에 일년 살았으니까 원어민처럼 말하겠다’ 한다. 하지만 나뿐만 아니라 여기서 만나게 되는 모든 한국인들은 입을 모아 말한다. 몇 년 살았다고 절대 영어가 술술 나오지 않는다고 말이다. 술술은커녕 어쩔 땐 정말 기본적인 의사표현이 안 되어서 진땀을 빼기도 한다. 한국 같은 조건에서 조기영어교육이 얼마나 효과적인가에 대해서는 아직도 여러 의견이 분분하지만, 언어 습득의 결정적 시기라는 것은 확실히 존재하는 것 같다.
중학교 때 ABC를 배우기 시작해 수능 시험 이후 영어 공부라고는 손을 완전히 놓은 나는 그 결정적 시기를 놓치고 오늘도 헤매고 있다. 영어가 힘들고 미워질수록 한국어의 소중함은 배가 된다. 거의 예외가 없는 발음 규칙, 조사 하나에 달린 묘한 의미의 차이, 주어 동사 없이도 다양한 감정을 전달할 수 있는 표현들까지. 다른 나라 말은 거의 모르니까 모든 언어가 어떤 특징을 지녔는지는 알 수 없지만 한글과 한국어는 한국인으로서 내가 가장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부분이다.
그런데 딱 한가지 영어가 정말 좋다고 느껴지는 점이 있다. “나이 차이”가 대화에서 전혀 중요하지 않다는 사실이다. 언니, 선생님, 누구씨 등 호칭이 따로 필요하지 않고, 나보다 나이가 많은가 적은가 눈치를 살펴 존댓말을 어느 수준까지 할 것인지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 스물 한 살 대학생과 얘기하면서도 친구처럼 느껴지고, 일흔이 넘은 할머니와의 대화도 정말 편하고 재미있다.
물론 관계야 맺기 나름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지금까지 나의 경험으로는 이 ‘호칭’과 ‘존칭’ 문제 때문에 한국 사람들을 만날 땐, 웬만큼 가까운 사이가 아니고서는 편하게 이야기하는 것이 쉽지 않다. 직업을 모르거나, 직업이 없는 사람이거나 그런데 거기에다 ‘언니, 오빠’ 라고 부르기엔 애매하게 한 열 다섯 살 이상 많은 사람을 만날 때 정말 뭐라고 불러야 할지 난감하다. 호칭이 정해지는 순간 암묵적으로 서열이 정해지는 듯한 느낌도 싫다. 아니 뭐 꼭, 여태껏 한국인 친구 한 명 못 사귀어서 외로움 병에 걸린 탓을 ‘우리말’에 돌리려는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