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과 삶] 장 스텔라 l 멀티미디어 무대에 올린 장엄미사
2015-07-15 (수) 12:00:00
장 스텔라(음악 칼럼니스트)
설명이 필요 없는 세기의 악성 베토벤 그의 이름에는 천재성의 음악을 거론하지 않고도 치명적인 악 조건이었던 소리가 안 들리는 먹먹한 귀로 가장 유명한 9번 합창 심포니의 작곡과 초연 지휘를 한 에피소드로써 인간완성을 이룬 훌륭한 인물임을 알게 하고 있다. 예술의 성공도 인간 성취의 성공도 함께 한 위대함 때문이다.
SF 심포니의 시즌 마지막 6월의 음악회들은 지난해 시즌에 이어 금년시즌도 베토벤 시리즈로 막을 내렸다. 베토벤 음악 마라톤을 비롯해 실내악 심포니 피아노 협주곡 등의 기악곡과 오페라 피델리오, 미사 솔렘니스의 성악곡들을 마치 오페라 스테이지처럼 움직이게 만들었다. 마침 Missa Solemnis, 장엄미사곡의 마지막 드레스 리허설을 보게 되어 스테이지 기술진을 비롯한 음악회장의 모든 움직임을 자세히 볼 수 있는 좋은 기회를 가졌다. 심포니의 이런 스테이징 시도가 처음은 아니지만 이번 연주는 많은 변형 끝에 새로운 스테이지를 시도하여 (LA에서도 같은 프로덕션으로 SF심포니 지휘자 MTT가연주함)성공적 이라는 좋은 반응을 얻었다.
베토벤의 후기작품인 이 장엄 미사곡은 베토벤 자신이 오랫동안 교회음악을 연구하고 미사곡을 쓸 계획으로 옛날 교회의 형식도 자신의 창작적인 탐험과 연구를 통해 사용 했으며 작곡자 자신이 이 미사곡은 그의 작품 중에서도 아주 크고 위대한 창작이 될 것 이라고 하였다. 가장 많은 합창단원이 스테이지에 섰던 미사 솔렘니스의 스테이징과 큰 역할을 한 조명과 안무, 하이 테크닉의 서포트 의상 등등은 최상이었다. 지휘자의 포부를 들으니 영상을 겸비한 스테이지의 시도는 꾸준히 계속 될 것이라고 했다.
오늘의 완벽치 못한 부분이 오히려 다음에 새로운 변화를 기대하는 틈을 줄 수 있는 기회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던 것은 지난번의 시도와 또 다르기 때문이다. 솔리스트들의 자유스러운 움직임은 노래에 따라 잘 기획되고 충분한 리허설이 있은듯하나 너무 많은 숫자의 어린이 합창단의 움직이는 동선은 어지럽게 방향의 혼선을 빚어 음악을 훼방 놓는 것 같았다. 얼마나 많은 인원들이 함께 움직이며 협조 하는지는 헤아릴 수 없었지만 더러는 지루함을 덜어주는 재미로도 본다고 하니 할 말은 없다. 쓸데없는 움직임이 비좁은 무대에서 자칫하면 부딪칠까 걱정되는 부산한 무대이기도 했다. 미사곡 가사에 따라 간단한 연기를 하는 것은 수화 같은 바디 랭귀지로 이해가 쉽기는 했다. 첫 장의 Kyrie, 자비하심을 구하는 부분은 무릎을 꿇고“Missa Solemnes in multi media stage” 하늘을 바라보고 또 고개를 숙여 자비를 구하는 것 같은 경건하면서도 간단한 연기와 가사의 의미를 몸으로 표현하며 노래하는 모습이다. 스테이징이 아주 놀랍다. 누가 미사곡을 연극무대처럼 할 것이라 생각했으랴.
미사곡에서 가장 길고도 아름다운 Gloria는 참으로 장엄 성대한 천상의 이야기, 합창과 텍스트가 어우러지는 영상의 아름다움이 효과적이었다. Sanctus Benedictus의 독창에서 2,3,4중창과 합창에서의 형식미와 감성미의 절정은 인간의 목소리로 표현하는 아름다운 신앙고백이다. 노래에 빠질 수 있는 완벽한 음악적 성취감은 베토벤 자신의 깊은 신앙심과 인간의 존엄성을 느낄 수 있었고 그 느낌은 내게도 크나큰 선물이었다. Agnus Dei, 하느님의 어린양의 표현은 마치 어린 예수를 보호하고 예우 해주는 것 같이 또 “Qui tolis pecata mundi Dona Nobis Pacem” 평화를 주소서의 평화를 표현하는 손짓은 어깨에 손을 얹어 화해와 용서를 함께하는 표현으로 그래서 “평화를 얻는다”라는 의미로 누구나 느낄 수 있는 훌륭한 안무였다. 내가 미사에서 익히 보고 말하는 것들이라 이해도 쉽고 공감도 갔지만 이 부분은 조금 아이들의 유희 같은 생각이 들기도 해 장엄 보다는 약간 희극적인 재미도 있었다.
심포니 주자들 중에서도 솔로 부분을 연주 할 때는 무대로 올라와 연기자처럼 스폿 라이트를 받으며 연주를 하는 것 까지 각색하여 움직이는 무대의 버라이어티를 주었다. 사실 베토벤의 심포니 나 기악곡들은 이해하기가 쉽고 좋지만 성악곡들은 성악가들이 부르기도 쉽지 않을 뿐 더러 감상도 쉽지 않다. 그러나 이번의 스테이징으로 무대에 올린 장엄미사곡은 이해하기도 감상의 깊이와 작곡가와의 밀도도 너무 좋았다. 과연 제목처럼 “장엄미사”의 무게와 가슴속에 스며드는 베토벤의 새로운 이해로 그의 성악곡들에의 편견이 완전히 무너진 것 같다. 다른 각도로 감상하는 효과가 특히 현대의 멀티 미디아의 효과가 오디언스의 감각과 어려운 작품의 공감대를 끌어내 지루하지 않고 재미있게 감상하게 할 수 있다는 것이 놀랍고 기쁘다. 마치 아주 어려운 한문고서를 이해하기 쉬운 만화로 다시 써서 인기를 얻게 된 새로운 작품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