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여성의 창] 양유진 l 씨앗을 뿌리다

2015-07-15 (수)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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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공을 말하면 제일 많이 듣는 질문이 “그게 뭐에요?” 혹은 “그걸로 뭐해요?”이다. 한국유학생들한테 인기 있는 경제학 분야와 달리 사회복지학을 선택하는 학생 수가 적기 때문이다. 내가 전공하는 사회복지학은 소외된 계층의 작은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공부다. 그래서 이 분야는 섬세한 감성을 가진 사람들에게 적합하다고 본다.

내가 이 전공을 선택한 계기는 작은 나눔에서 비롯되었다. 내가 다니던 여중, 여고는 학교 로고가 박힌 양말을 하루도 빠지지 않고 신어야 했고 두발규정 또한 엄격했다. 여학생들에게는 머리가 유일한 개성의 표현이었기에 두발검사 하는 날엔 모두들 극도로 긴장했다. 어느 날 아침, 나의 시선을 사로잡는 뉴스가 있었다. 한국백혈병소아암협회를 통해 환아들에게 모발을 기증할 수 있다는 것이다. 홈페이지에서 모발을 구하는 사연을 읽자 눈물샘이 고장이라도 난 듯 멈출 수가 없었다. 항암치료로 인해 빠져버린 머리카락을 마주하는 어린이와 그 가족들의 슬픔이 내 일처럼 느껴졌다. 망설임없이 미용실로 달려가 모발 기증을 할 수 있는 최대의 길이를 자로 재어 잘랐다. 싹뚝. 어깨 밑으로 넘실거리던 굵고 건강한 내 머리카락을 한 오라기라도 흐트러지지 않게 소중히 담아 보냈다. 기쁨과 위로의 편지와 함께.

큰 뜻 없이 한 내 행동이 친구들 사이에 얘깃거리가 되었다. 좀더 일찍 알았으면 하는 아쉬움과 친구들도 동참할 것이라는 기대도 있었다. 그러나 봉순이 언니 같은 내 모습에 충격을 받은 친구들의 반응을 보자 당황스러웠다. 본인의 외모가 우선이라고 흥분하는 친구, 따라하고 싶지만 선뜻 용기가 나지 않는다는 친구, 모발을 팔아서 얼마를 받았냐는 엉뚱한 질문을 하는 친구, 다른 건 양보해도 절대 할 수 없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던 친구 등 다양한 반응들이었다. 친구들의 솔직한 대화를 통해 나는 누군가의 아픔에 깊이 공감할 줄 아는 특성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 작은 나눔이 씨앗이 되었고 그 씨앗은 내 마음 깊은 곳에 뿌리를 내렸다. 복지는 상대방을 이해하는 작은 공감에서 출발한다. 나눔에 있어 크고 작은 것은 없다. 작은 씨앗이라도 커다란 그늘을 제공할 나무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그런 씨앗을 뿌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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