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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용원의 서양미술 산책 (2) 바로크 예술과 카라바지오의 생애

2015-07-15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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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극단적 자연주의 바로크 미술의 개척자

강용원의 서양미술 산책 (2) 바로크 예술과 카라바지오의 생애

Supper at Emmaus (1601)

강용원의 서양미술 산책 (2) 바로크 예술과 카라바지오의 생애

‘The Calling of Saint Matthew’

드라마틱한 빛 사용. 인간에 대한 현실적 통찰력
바로크 미술에 중요한 역할
투옥.살인.도피 등 파란만장한 삶 살다 39세 요절
루벤스. 렘브란트 등 후대 아티스트들에 깊은 영향


카라바지오(Caravaggio)는1593년과 1610년 사이 로마 , 나폴리, 몰타, 그리고 시실리 등에서 활약한 이탈리안 화가이다. 드라마틱한 빛을 사용한 physical 하고 감성적인, 인간에 대한 그의 현실적인 통찰력은 바로크 페인팅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카라바지오는 밀란에서 후기 르네상스 화가인 티션의 제자인, 매스터 밑에서 훈련을 받는다. 20대 초반의 카라바지오는 로마로 이주하며 그 당시 16세기 후반에서 17세기 초 사이 그곳에는 많은 대형 새 교회들과 Palazzo (Palace)를 짓고 있었으며 또한 그곳에 채워 넣을 많은 그림들을 필요로 하였다.

반종교개혁 기간 동안에는 로만 가톨릭 교회들은 개신교의 위협 에 맞설 종교적인 그림을 필요로 하게 되며 이를 위해서는 지난 1세기를 이끌어온 Artificial한 16세기 매너리즘은 더 이상 적합하지 않았다. 카라바지오의 그림들은 큐라씨큐로를 사용한 검은 Back Ground의 드라마틱한 극단적인 자연주의이다.


카라바지오는 ”Martyrdom of Saint Matthew” 와 “Calling of Saint Matthew”로 출전 한 그의 첫 번째 Public Commission을 성공리에 마치게 됨으로써 후원자를 쉽게 구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그는 그의 성공을 잔인하고 그릇된 잘못된 쪽으로 사용한다. 그는 여러 번 감옥에 투옥되며 자신의 아파트를 Vandalize하기도 하고 궁극적으로는 교황으로부터 사형선고를 받기도 한다.

1604년 그의 초창기 기록과 처음 3년간 기록을 보면 그가 얼마나 잘못된 쪽으로 가고 있었나를 알 수 있고 1606년에는 한 젊은이를 말다툼 끝에 죽여 현상금이 걸려 로마로부터 도망친 적도 있다. 1608년 Malta에서는 또 다른 다툼과, 1609년에는 그의 적들로부터 생명에 위협을 받기도 하며 결국 그 이듬해 39세의 짧은 인생으로 그의 생을 마감한다.

카라바지오는 죽은 후 잊혀져 있다가 20세기에 와서야 재조명되기 시작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쇠퇴하기 시작한 매너리즘(Mannerism)* 으로부터 나타나기 시작한 그의 새로운 바로크 스타일* 은 그 후 다른 아티스트들, 특히 피터 폴 루벤스, 쥬쎄페 디 뤼베라, 지안 로렌조 버니니 그리고 렘브란트 및 기타 아티스트들에게 직접, 간접적으로 깊은 영향을 주었으며 이들을 카라바 지스티 (Caravaggisti) 혹은 카라바 지스크(Caravagesques), 또는 테네브리스츠 (Tenebrists), 테네브라찌(Tenebrosi) 혹은 “쉐도위스츠(Shadowists) 라 부르게 된다. 이와 같이 카라바지오는 바로크 페인트의 창시자로써 그의 바로크 스타일은 수많은 아티스트들에게 영향을 주었다.

■앞서 나온 단어 설명: 많은 사람들은 흔히들 ‘그 친구 매너 가 좋다, 나쁘다“ 스타일이 “바로크스타일이다 아니다” 는 등 그 내용과 어원이 어디서 유래한 것인지 모르고 사용하는 경우가 많으므로 필자는 이에 대한 간단한 설명을 하고자한다.

매너란 말은 Mannerism에서 유래된 것이며 매너리즘은 1520년경 이탈리안 후기 르네상스 말경에 유러피언 아트에 탄생한 스타일이란 말이며 이 매너리즘은 1580년 카라바지오의 바로크 스타일 (진한 검은 Background의 명암)이 이를 Replace 하면서 막을 내리게 된다. 하지만 네덜란드 등 북유럽의 매너리즘은 17세기 초까지 지속되게 된다.

▲카라바지오의 Supper at Emmaus (1601)
이 그림에서 부활 하신 예수님은 자신이 누구라는 것을 알리지 않고 엠마오 Town에 류크와 클레오파로 추정되는 그의 두 제자들 앞에 나타나며 예수님은 곧 그들로부터 사라진다(Vanish). (Gospel of Luke 24: 30-31). 가운데 앉아 오른손을 들고 있는 그림은 예수님이며, 조개껍질을 단 옷을 입고 양팔을 벌리고 있는 것은 클레오파이고 팔꿈치가 헤진 옷을 입고 있는 또 다른 제자는 류크 그리고 왼쪽에 서있는 젊은이는 아티스트 자신(카라바지오)이다.

▲‘The Calling of Saint Matthew’
‘The Calling of Saint Matthew’는 카라바지오의 매스터 피스로 예수님이 Matthew에게 그를 따르도록 Inspire 하고 있는 장면 을 묘사한 그림. 1599-1600 그린 매스터 피스로 이와 같은 때에 그린 Martyrdom of Saint Matthew와 나란히 현재 로마, San Luigi dei Francesi에 전시되어 있다.


<제공: 예술의전당, 아라베스크, 강용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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