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체제 존중·흡수통일 배제’ 고심⋯ 북 화답 미지수

2025-08-16 (토) 12:00:00 조영빈·김형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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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북관계

▶ “비핵화, 단기에 해결 어려운 과제”
▶ 한반도 비핵화 목표는 재확인하되 북핵 압박 피하고 북미대화 힘 실어
▶ 정부 관계자 “새 제안보다 소통 먼저”
▶ 한미정상회담서 미 지지 확보 관건

이재명 대통령의 첫 광복절 축사에는 북한의 냉담함에도 신뢰·대화 복원을 통한 남북관계 회복을 도모해야 한다는 고심이 곳곳에 담겼다. ‘평화적 통일’을 말하면서도 북한 반발을 고려해 ‘체제 존중’ 메시지를 강조하고, 한반도 비핵화 목표를 재확인하면서도 북핵을 최우선 협상 의제로 내세우지 않겠다는 메시지를 발신하면서다.

이 대통령은 15일 광복절 80주년 경축식 축사를 통해 “(남북관계의) 먼 미래를 말하기에 앞서 지금 당장 신뢰 회복과 대화 복원부터 시작하는 게 순리”라고 밝혔다. 이어 대북 전단 살포 및 대북 확성기 방송 중단 등 정부 출범 후 지난 2개월여 단행해 온 대북 유화 조치를 열거한 뒤 “(문재인 정부 때 발표한) ‘9·19 군사합의’를 선제적으로, 단계적으로 복원”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특히 이 대통령은 남북관계에 대해 “남북은 원수가 아니다. 서로의 체제를 존중하고 인정하되 평화적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의 특수 관계”라고 정의했다. 또 “북측의 체제를 존중하고 어떠한 형태의 흡수 통일도 추구하지 않을 것이며 일체의 적대행위를 할 뜻도 없음을 분명히 밝힌다”고 강조했다.


북한은 2023년 말 남북관계를 ‘적대적 두 국가 관계’로 새롭게 규정했다. 통일을 목표로 한 같은 민족 개념을 지우고 각각 별개의 국가로 가자는 것이다. 이에 이 대통령은 평화적 통일을 지향하는 특수 관계라는 기존 입장을 재천명하며 북한의 ‘두 국가론’에 선을 그은 셈이다. 대신 ‘흡수통일 배제’와 ‘북한 체제 존중’이란 메시지를 담아 통일 담론 자체를 ‘일방에 의한 흡수통일’로 인식하는 경향이 강한 북한을 배려한 셈이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흡수통일 배제의 이 대통령의 메시지는 과거 지도자들의 입장보다 더 직접적이고 선명하다”며 “다분히 북한을 의식한 표현”이라고 짚었다.

같은 흐름에서 ‘한반도 비핵화’ 메시지도 조심스러운 형태로 담겼다. 이 대통령은 “평화로운 한반도는 핵 없는 한반도”라며 한반도 비핵화 목표를 재확인했다. 다만 “비핵화는 단기에 해결할 수 없는 복합적이고 어려운 과제”라고 언급한 뒤 “남북·미북 대화와 국제사회의 협력을 통해 평화적 해결의 실마리를 찾겠다”고 설명했다.

북한은 최근 김여정 북한 노동당 제1부부장의 대미 담화 등을 통해 ‘비핵화를 위한 협상 테이블에는 앉지 않겠다’는 입장을 내놨다. 명시적으로는 북미 협상을 거부하고 있으나 핵 보유국 지위를 전제로 한 대화 가능성은 열어두었다. 여기에 이 대통령은 ‘비핵화는 단기적 과제가 아니’라는 메시지를 발신, 북측이 생각하는 북미 대화 조건에 힘을 실어주는 모양새를 만든 셈이다.

이 대통령의 메시지에 북한이 호응할지는 미지수다. 북한이 지난달과 이달 두 차례에 걸친 김여정 부부장의 대남 담화를 통해 “한국과 마주 앉을 일은 없다”는 입장을 거듭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이 대통령이 새로운 대북 제안을 내놓지는 않은 것도 이 같은 상황을 감안한 것으로 보인다. 정부 관계자는 “새로운 대북 구상이 당장 힘을 받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파격적인 제안보다는 꾸준한 신뢰 회복 노력으로 기본적인 소통 채널부터 복원하자는 게 정부의 1차적 목표”라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오는 25일 미국 워싱턴에서 열리는 한미 정상회담을 통해 미국의 지지 등을 통한 남북관계 개선의 실마리를 찾는 게 이 대통령의 선순위 과제가 될 전망이다.

<조영빈·김형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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