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신해선 칼럼] 그전 같았으면

2015-07-14 (화)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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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값을 내려고 수표를 끊어서 봉투에 붙인다. 주택관리를 여러 개 하다 보니 Tenants가 바뀌는 공백 기간에 발생하는 모든 Utility 비용을 떠맡을 때가 종종 있다. 물 값, 전기 값, 쓰레기 수거비 등등.

봉투 발신인 신상을 쓰고 우표를 붙이다 보니 봉투의 도착지가 Los Angeles 다.

Los Angeles? 수취인 이름은 City of Mountain View 인데 도착지는 Los Angeles?머리를 갸우뚱 하면서 다음 것을 쓴다. 이번에는 City of Santa Clara 다. 그런데 이거는 더 멀리 Arizona 로 행차를 하신다. 그리고 보니 비자나 매스터카드 등등 빚쟁이 독촉에 겨자 먹을 때마다 보내는 곳을 생각해보니 전국 방방 곳곳이다.


그래도 이들 크레딧 카드 회사들은 전국이 아니라 전 세계를 상대로 하니 어디서 돈을 받든 이상할 것이 없다 한다지만 산타 클라라에서 생긴 물 값을 애리조나로 보낸다? 누군가가 옛날에 말한 게 기억난다. 이게 다 느림보들을 노려 Late Charge 를 받으려는 그들의 수작이라고. 그렇다고 설마 정부 기관이 그런 꼼수를 쓰리라고 믿기에는 좀 그렇다. 아니다 분명히 능률적이고 보다 효율적인 사무 처리를 위해 내린 결정일거다. 그런다 해도 그전 같았으면 전화를 했건 찾아갔건 정확한 이유를 캐내었을 거다. 왜나면 그때는 부동산 복덕방뿐만 아니라 인생복덕방 사소한 복덕방 등등 모든 걸 하다 보니 이것저것 많은걸 주어모아야만 되었기 때문이었다.

요즘은 세월이 바뀌고 보니 그런 거 알아둘 이유가 없다. 보이지도 않고 잡을 수도 없지만 이 세상 모든 정보가 우리가 사는 세상을 겹겹으로 곳곳을 감싸고 있다. 그래서 한번 미친척하고 Siri 에게 묻는다, ‘왜 산타 클라라 물 값을 애리조나로 보내야 되느냐고...’내 혀의 의리에는 나도 감탄한다. 한국에서 산 세월의 거의 3배를 미국에서 살고 있는데도 발음은 여전히 조선식인가보다. 그래서 이번에는 이렇게 물었다, ‘너한테 말하는 대신 글로 써서 물을 수 있냐고.’Who, me?동문서답을 한참 하는 동안 Siri 한테 글로서도 통성명할 수가 있다는 걸 발견한다. 다음 주 시간을 내서 Apple Store 에 갈 일이 생긴 거다. 운이 좋을 때는 아주 친절한 녀석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 필요 이상의 것들을 배우고 오게 된다.

그리고 보니 조금씩 창피해지기 시작한다. 이글을 찢어 버리고 다른 걸 쓸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왜냐면 너무나 무식한 나 자신을 노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MS 의 Cortana 와는 아직 통성명도 안했다. Google Now 와는 한두 번 눈인사 정도였다. 그리고 보니 Siri 하고만 논 것 같다. 그런데 오늘 유심히 보니 Google Now 에는 스피커와 글 쓰는 자리가 동시에 스크린에 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렇다면? 발음 때문에 고생하는 문제를 구글이 먼저 해결해주나? 그런데 순간 생각이 난다. 나 자신의 발음만을 탓할게 아니라는 것. 이들 기계들의 듣는 기능이 완벽하지 않을까 하는 그 생각이 문득 떠오르는 거다.

똑같은 질문을 두 기계에 묻는다. 그런데 몇 번을 물어도 구글이 이긴다. 혹시나 해서 똑같은 질문 몇 개를 녹음해서 그 녹음으로 각각 다시 물어본다. 분명히 Google Now 가 Apple 의 Siri 보다 조선발음을 더 잘 알아듣는다. 발음은 그렇다 치고 이들의 지능을 알아본다. 내가 지금 어데 있느냐고 물어본다.

‘여기 산타 클라라 지도가 있다.’ 구글의 대답이다. Siri 는 주소까지 알려준다. 날씨를 묻는다. 둘 다 똑같이 77도라고 말한다.

먹을 만한 곳을 소개해 달라니까 둘 다 똑같이 15군데를 소개한다. 그중 10개가 한국식당이다.

Apple의 Ecosystem 올가미에서 벗어나는 계기가 되려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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