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여성의창] 변소연 l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2015-07-10 (금)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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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마흔이 되었으나 미혼인 한 미모의 여배우가 자신의 결혼관에 대해서 인터뷰한 것을 보았다. 내 머릿속에는 내숭 가득하고 새침한 연예인으로 기억되던 그녀가 말했다. 나이가 들수록 자기애가 점점 강해지고 고집이 세져 누군가를 믿고 의지하는 것이 힘들다고. 그 한 줄의 말에서 나는 그녀가 지난 몇 년의 휴식기 동안 체득했을 솔직함과 담백함을 느꼈다. 그리고 강해지는 자아 때문에 마주했을 외로움도.
외로움은 사람의 기본 성향이다. 독립적이고 자기애가 강한 사람도, 항상 밝고 긍정적인 친구들도 가슴 저변에는 외로움이 깔려 있다. 외로움을 느끼는 이유는 여러 가지다. 마음을 주었던 이성친구를 바다 건너 떠나보낸 후 느낀 나의 외로움은 삼십 년 동안 몸 바친 교직에서 물러나 퇴직을 준비하는 우리 아버지가 느끼는 외로움과 근본은 같지만 원인은 다른 것처럼. 자식들 뒷바라지하느라 청춘을 바쳐 일했던 곳을 자식들을 자립시키고 그만두려니 아버지로서는 행복하시겠지만 한 사람으로서는 참 외로우실 것 같다. 적어도 이 시대의 모든 부모님은 그리고 장차 부모님이 될 많은 친구들은 비슷한 외로움을 겪지 않겠는가.

나는 한때 외로움이 슬픔 또는 절망감처럼 부정적인 의미를 가진 단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은 외로움마저 유쾌하게 풀어내는 능력을 기르고 있다. 문득 내가 안갯속을 걷고 있는 기분이 들 때. 어느 날 이 안개도 걷히고 다시 따뜻해질 것이라고. 가끔씩은 그냥 운명처럼 현재를 받아들여야 할 때도 있는 것이라며 쿨하게 넘겨본다.

외로움을 좋은 기운으로 승화시키는 자신만의 방법이 있는지 잠시 되돌아보자. 개인적으로 추천하는 방법은 외로움을 정면으로 부딪히는 것이다. 그리고 남들에게 솔직하게 털어놓는 것이다. 그러면 알게 될 것이다. 씩씩하게 가정을 지켜온 아버지도, 시시콜콜한 얘기만 주고받던 친구들도 다 각자의 외로움과 부단히 마음빵 하고 있다고.

수선화에게 정호승울지 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 눈이 오면 눈길을 걸어가고/ 비가 오면 빗속을 걸어가라/갈대숲에서 가슴 검은 도요새도 너를 보고 있다/ 가끔은 하느님도 외로워서 눈물을 흘리신다/ 새들이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가/ 네가 물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다/ 산 그림자도 외로워서 하루에 한 번씩 마을로 내려온다/ 종소리도 외로워서 울려 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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