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여성의 창] 윤아영 l 우리집 꾸꾸

2015-06-25 (목)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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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너에 대한 이야기를 글로 한번 쓰리라 생각했었다. 오늘처럼 특별히 할 이야기가 없을 때, 그러니까 한 시간을 꼬박 컴퓨터 앞에 앉아 있었지만 텅 빈 모니터에 커서만 깜빡이는 것을 더는 참을 수 없어 억지로 만들어 내는 이야기는 아니란 말이다. 어쩌면 이런 위기 아닌 위기가 닥쳐 온 순간에조차 나에게 구세주가 되어 주는 너. 아 소중해라.

나는 너의 그 호기심을 사랑한다. 뭐라도 하나 작은 변화가 생기면 눈을 똥그랗게 뜨고 다가가 만져보고, 냄새를 맡아보고, 이리저리 관찰하다 그 위에 굴러도 보고. 매일 비슷하게 반복되는 일상이 지겨울 법도 한데 너의 세상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 그렇게 관심을 가지니 인생이 그렇게 지루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너의 그 집중력을 사랑한다. 새로운 장난감이라도 하나 등장하면 너는 놀라운 집중력을 보이며 한참을 신나게 논다. 동쪽 창문을 통해 집안 가득 비치는 아침 햇살이 블라인드에 가려 이리저리 움직이는 모양을 그렇게 오랜 시간 바라보며 잡았다 놓았다 반복하는 모습이 과연 네게도 생각이란 것이 있음을 확인케 한다.


나는 너의 그 끈기를 사랑한다. 처음부터 너에게 침대를 허락하고 싶지는 않았다. 날카로운 발톱으로 이불을 망가뜨릴까, 네 털들 사이의 세균을 공유하게 될까 걱정했지. 그러나 너는 한 달을 꼬박 새벽마다 침실 앞에서 울어댔고, 결국 너의 끈기 앞에 내가 지고 말았다. 하루 종일 목욕하는 것이 일인 네가 나보다 깨끗하다는 것을 알게 된 후였지만 말이다.

나는 너의 그 절제를 사랑한다. 누가 ‘짐승보다 못하다’는 표현을 만들어냈단 말인가. 너는 스스로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은 구별할 줄 아니 어떤 면에서는 인간보다 낫다. 쓰레기통을 뒤져서는 안 된다는 것과 식탁 위에 올라와서는 안 된다는 것, 엄마가 먹는 음식에는 손대면 안 된다는 것 등을 채찍, 당근이 없이도 스스로 파악하고 잘 지키고 있다.

아직 나의 사랑 고백은 한참 남았는데, 글을 마쳐야 한다. 꼭 이런 저런 이유가 있어서 네가 맘에 드는 것은 아니다. 너는 우리 가족이니까, 그냥 있는 그대로의 네가 다 좋다. 우리 집 예쁜 고양이 꾸꾸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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