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여성의 창] 양유진 ㅣ결핍의 힘

2015-06-24 (수)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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콤플렉스! 참으로 인간다운 단어가 아닐 수 없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두가지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서류를 꼼꼼하게 잘 정리하는 친구를 보면 입이 쩍 벌어지고, 화술이 뛰어난 선배들을 보면 감탄사가 절로 나오며 나의 부족한 점이 상대적으로 더욱 두드러지게 된다. 바로 그 순간, 결핍이 나를 움직이게 한다. 감추고 싶은 콤플렉스에서 개선하고자 하는 의지로 탈바꿈하는 순간 말이다.

한국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친구도 없는 타국에서 제일 먼저 찾아간 곳은동네 도서관이였다. 학교 끝나고 곧장 영풍문고로 달려가서 책을 옆에 쌓아두고 반나절을 보냈던 걸 생각하면 도서관은 나에게 늘 최고의 놀이터였다. 책을 읽을 수 있다는 생각에 들뜬 마음으로 동네 도서관을 갔으나, ‘낫 놓고 기역자 모른다’라는 말을 온 몸으로 뼈저리게 체험했다. 미국에 온지 일주일도 되지 않았고 학교도 시작하기 전이라, 영어가 익숙하지 않았던 시절이였다. 지금이야 거부감 없이 술술 읽을 수 있지만, 책의 겉표지도 얇고 텁텁한 회색 종이에 빼곡히 쓰여있는 영어는 주술을 부린 듯 나를 몽롱하게 만들었다. 좋아하는 작가들을 찾는 것도 힘들었고 어느 분야로 가야 할지도 혼란스러웠다. 유아, 청소년, 성인 코너 중 고민없이 성인코너로 들어왔지만 뒷걸음치며 스스로를 과대평가했음을 깨달았다.

알록달록한 색으로 가득한 유아코너에 자꾸만 눈길이 갔지만 내 키 높이에 반도 채 안되는 책장크기와 유아 사이즈 의자가 가득한 곳에 가자니 소인국에 침범한 거인처럼 보일 것 같아 주춤거렸다. 부족한 점을 개선하고자 하는 의지가 다른 대안점을 찾게 한 원동력이 되었다. 도서관 사서로 봉사하기로 결심한 것이다. 봉사자 교육을 받으면서 책이 분류된 위치를 익히고 책의 표기법을 배웠다. 교육이 끝난 후 어디로 배치받고 싶냐는 질문에 망설임없이 유아코너로 지원했다. 도서관 명찰을 달고 당당하게 유아코너에서 시간을 보낼 수 있게 되면서 유아들을 위한 동화책과 초등학교 수준의 책을 마음껏 읽을 수 있었다. 아이들 수준에 맞는 책을 추천해달라는 부모들의 부탁이 가끔 있었지만 사실 유아코너에 있는 어른이 봉사자인지 일반 어른인지 신경쓰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결핍을 알아차릴 수 있는 사람은 자기자신뿐이고 개선하고자 하는 의지 역시 내 몫이다. 잘난 사람을 만나도 기죽을 필요가 없다. 지금의 결핍이 더 나은 나를 위한 미래의 자산이 될 것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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