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창] 양유진 ㅣ아이처럼
2015-06-17 (수) 12:00:00
기업의 연혁과 기업이 추구하는 인재상에 대한 검색을 멈추고 컴퓨터 모니터에서 시선을 뗐다. 자격조건을 읽으면서 스스로가 부족하게 느껴지고 도달하고자 하는 목표는 더욱 아득해져만 간다. 잠시 눈을 감고 휴식을 취하려 하자 집중할 때는 들리지 않았던 앞집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창문 너머로 들려온다. 깔깔거리는 아이들의 순수한 웃음소리는 복잡했던 내 머릿속을 단순하게 해주는 치료제다. 웃음소리를 듣고 있자니 아이들과 함께 한 추억들이 파노라마처럼 떠오른다. 버클리에 위치한 초등학교에서 제 각각 다양한 심성을 가진 아이들을 1:1로 가르치다보니 아이의 성향과 행동에 대해 주의깊게 관찰하는 습관이 생겼다.
곱슬머리에 까만 피부를 가진 한 아이는 밝고 쾌활한 성격이라 수업은 늘 활기차게 시작하지만 책을 읽기만 하면 축 늘어지며 금새 딴 이야기로 빠져들어 진도빼기가 쉽지 않았다. 같은 교실에서 여러명의 대학생들이 각자 맡은 아이와 수업을 하는 도중 바로 옆 그룹의 아이가 고집을 피우다 울음을 터트렸다. 내 아이가 산만한 분위기에 영향을 받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울음소리 속에서도 평소보다 더 큰소리로 책을 또박또박 읽기 시작했다. 수업을 마치며 평가지를 작성한 후 보상으로 주는 사탕을 꺼내자 “오늘 열심히 했는데 사탕 두개 주면 안되요?”라고 묻는다. 기특한 마음에 그래도 된다고 하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사탕 하나를 울던 아이에게 전해주었다. 친구가 울 때 사탕을 달라고 떼를 쓰며 수업을 멈출 수도 있는 상황에서 수업을 잘 마친 후 소중한 사탕을 나눠주던 모습이 오래도록 강렬하게 기억에 남는다.
우는 친구에게 바로 달려가기보다 자기 역할에 충실하기로 결정한 판단력. 나와 신뢰를 구축하고 성취한 후 보상을 요구한 원활한 의사소통, 억지를 피우기보다는 자신의 힘으로 두 개의 사탕을 얻은 책임감과 인내심, 친구와의 나눔. 아이가 한 행동 속에는 유엔직원의 핵심역량들도 포함되어 있다. 어쩌면, 기업이 원하는 인재상에 부합되는 능력과 가치들은 우리 모두 어릴 적부터 갖고 있었을 지도 모른다. 능력의 유무가 질문이 아니다. 성장하면서 얼마나 지켜오고 개발했는지를 묻고 있는 것이다. 각박한 현실 속에서 가치의 우선순위를 내 이익에만 둔 건 아닌지, 머리보다 가슴으로 익혔던 것들을 잊어버린 것은 아닌지. 아이 속에서 인재상을 찾았고 잊고 있던 내 가치도 찾았다. 가야 할 방향까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