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여성의 창] 양유진 ㅣ 새로운 스킬 획득

2015-06-10 (수)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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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마침 시간이 생겨 Berkeley Symphony에서 봉사를 했다. 펀드레이징이란 말에 들뜬 마음으로 갔으나 역시 큰 일 을 하기 위해선 작은 일부터 치뤄야 하는 법.

15/16 오케스트라 새 시즌을 맞이해서 지금까지 기부한 사람들을 알파벳 순으로 정리하고 후원금을 조달받기 위해 새 스케줄과 감사장을 봉투 안에 차곡히 넣어 우표를 붙이는 일을 맡았다.

소소한 일이라도 낯선 환경에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건 언제나 즐거운 일이다. 수 천장의 팜플렛과 감사장을 봉투에 넣는 반복적인 일을 하다보니 어느새 손의 동선이 읽혀진다. 봉투의 방향에 따라 열고 닫을 때 손목이 꺾이는 횟수가 늘어나기에 팜플렛과 봉투의 위치를 바꿔 손의 움직임을 최소화했다.


누구에겐 참 사소한 일 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사소함이 결국 일의 효율성을 결정 짓는 요소가 된다. 우표 붙이는 일도 마찬가지이다. 상자에 빼곡히 정리되어있는 봉투들을 하나씩 꺼내기보다는 봉투 모서리만 올려 우표를 가까이 대서 붙이는 게 내 방식이다.

경쟁구도는 아니였지만, 같은 시간에 다른 사람보다 1.5배 빠른 속도로 일을 마무리하자 담당자의 감탄사가 들린다. 일의 효율성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나는 혼자 일하는 것을 좋아했다.

하지만, 나 혼자 잘났다고해서 잘살 수 있는 세상이 아니듯, 개인만의 실력이 능사는 아니라는 걸 로렌스 과학관에서 일했을 때 깨달았다. 시각적으로 정보를 전달 받는 전시가 아닌 손으로 만지면서 체험이 많은 핸즈온 엑티비티(Hands-on activity) 중심이기에 유난히 손님들과 교류가 많은 일이다.

한 전시관마다 돈을 받고 일하는 대학생과 봉사시간을 채우려는 고등학생 봉사자들로 나눠진다. 소득없이 하는 봉사라지만, 대부분의 고등학생들이 가만히 앉아 시간만 떼우고 가는 경우가 있다.

동료들은 돈을 받고 일하니 쓴소리도 못하고 지켜만 볼 따름이다. 앙금만 깊어져가는 사이, 훈계를 하기보다 손님들과 교류해 볼 것을 부드럽게 제안해보았다. 막상 해야할 것을 지시해주니 꽤나 성실히 임하는 모습을 보고 그 아이의 나태함이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지시하기 전까지 무엇을 해야할지 몰랐던 아이들은 지시받는 것이 편하고 평가받는 것에 익숙했던 것이다. 말만 잘 들으면 되던 학생때와 달리 나 역시 이제는 일의 전체적인 흐름을 읽고 지휘할 줄 아는 능력도 필요한 위치에 놓이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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