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는 이성과 논리를 거부한다.
"As you sow, so shall you reap!” 뿌린대로 거두리라! 그게 업(業)입니다.
업(業)은 산스크리트어 카르마(Karma)의 번역입니다. ‘카르마’의 본래 뜻은 그저 ‘행위’입니다. Karma means action.
뿌린대로 거두리라! "애즈 유 쏘우, 쏘우 쉘유 리~입!" "As you sow, so shall you reap!” 그 누구도 감히 부정하기 어려운 진리로 군림하는[?] 표현입니다. 그런데, 곰곰히 생각해보면 이처럼 차갑고 쌀쌀맞은 표현이 또 있을까요? 진리면 진리지 이다지도 차디찰 필요가 있을까요?"As you sow, so shall you reap!” 업(業)을 섭리로 믿고 따르다 보면 시간도 뛰어넘게 됩니다. 착한 사람이 고통받는 건 전생의 업보 때문입니다.
사람이 날 때부터 소경이라면 필경 무슨 나쁜 사연 때문입니다. 그래서 소경같은 장애자를 보면 긍휼히 여기긴 커녕 ‘재수없어’ 하고 왠지 꺼립니다. 가련하다는 생각보단 ‘무슨 몹쓸 죄 때문에?’하는 고약한 발상에 얽매입니다. 업(業)때문이죠.
"As you sow, so shall you reap!” 그렇게 뿌렸으니 그렇게 거둔거지, 뭐! 그야말로 ‘차디찬’ 발상입니다.
업(業)을 섭리로 믿다보면 그래서 시간을 초월해야 합니다. 전생이 있고 내생이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뭔가 시원하게 풀리지 않습니다. “If you want to know the past, look at your present. If you want to know the future, look at your present.” 이렇게 고상한 가르침이 있어야 업(業)이 통째로 풀리게 됩니다. 과거를 알려면 지금 모습을 보고, 미래를 알려거든 지금 모습을 보라는겁니다. 현재는 과거 행위의 결과요, 미래는 현재 행위의 결과라는 인과법칙을 한마디로 ‘업(業)’ 또는 ‘카르마’로 정리하고 있습니다.
Grace defies reason and logic.
은혜는 이성과 논리를 거부한다.
그런데, 여기에 ‘업(業)’을 초극(超克)하는 컨셉[concept, 개념]이 하나 있습니다.
[참고로, 초극이란 초월하고 극복한다는 뜻] 바로 은혜(恩惠)입니다. 예쁘고 착한 소녀 이름같기도 한 이 단어는 전혀 ‘차디찬’ 느낌이 없습니다. 다만 감싸고 보듬는, 그리고 ‘거저 주는’ 따스함이 넘쳐납니다.
행위[karma]와 관계없이 거저 받는 게 은혜입니다. 뭘 어떻게 했기에 받는 게 아닙니다. 뭘 잘하고 잘못한 결과 때문이 아닙니다. 다만 ‘거저 주시니’ 그냥 ‘거저 받는 것’ 그게 은혜입니다.
죄인을 구하는 것, 그게 은혜입니다. ‘업(業)’은 정죄합니다. 죄를 묻고 따지며 심판합니다. 그렇게 뿌렸지 않느냐? 그러므로 그렇게 받을지어다. 그게 ‘업(業)’입니다. 은혜는 ‘그래도 용서하마’입니다. ‘어쨌든 용서하마’입니다. 우선 구하고 본다는 거죠.
일단 구한 후에 여차저차 구원의 행위가 따르게 되려니와, 일단 살에 꽂힌 독화살부터 뽑아내자는 게 은혜입니다. 이것저것 인과를 따지다 보면 전신에 독이 퍼져 이미 때가 늦어지기에, 우선 목숨부터 건져놓고 보자는게 은혜입니다. 이성과 논리가 아니라 그저 사랑에서 나오는 관용이 은혜입니다.
모세의 율법이 ‘업(業)’이라면 그리스도의 복음은 은혜입니다. 소승불교의 자력신앙이 업이라면 대승불교의 타력신앙은 은혜입니다. 오래 앉아 깨달음에 이르는 행위가 업이라면 아미타불 칭명염불(稱名念佛)은 은혜입니다. 내가 뿌린대로 내가 거두는 게 업이라면, 그저 ‘그분’의 섭리에 매달리는 게 은혜입니다. 업장소멸은 어려운 길이요 사실상 불가능한 신기루입니다. 업장을 소멸한다는 갖가지 기행(奇行)들은 결국 공염불이기 십상입니다.
Grace defies reason and logic.
은혜는 이성과 논리를 거부한다.
보노(Bono)라는 예명으로 노래하는 가수의 인터뷰 기사를 읽습니다. 록 밴드 U2의 리드 보컬이자 아일랜드의 싱어송라이터인 보노. 에민한 사회문제에 자기 소리를 내는 보노. 기부와 자선 그리고 전지구적 사안에 제법 ‘들리는 소리’로 알려진 보노의 영성을 들여다 봅니다.
이렇게 말하더군요.
"You see, at the centre of all religions is the idea of Karma." 알다시피 모든 종교의 중앙엔 카르마라는 아이디어가 있다. "And yet, along comes this idea called Grace to upend all that ‘As you reap, so will you sow’ stuff." 그런데, 뿌린대로 거둔다는 그런 걸 몽땅 뒤엎는 어떤 아이디어가 있는데 그게 바로 은혜란 거다.
그러면서 말합니다. "Grace defies reason and logic." 은혜는 이성이나 논리를 거부한다. 생각이나 말로 풀 수 없는 게 은혜란 거죠. 그리고 덧붙입니다. "Love interrupts, if you like, the consequences of your actions." 말하자면, 사랑이 행위의 결과를 끊어 버린다고 할까. 그래서, 결국 ‘업에서 은혜로’ 옮겨진 영성(靈性)을 구가하며 산다고 말하는 보노. Cheers, Bono! 노래도 말도 잘 하시네요. Shal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