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여성의창] 양유진 l 여성의 바람

2015-06-03 (수) 12:00:00
크게 작게
“여성의 창”은 젊은 여성들이 더 많이 신문을 읽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UC버클리 대학교 권영민 교수님의 건의로 만들어진 것을 알게 되었다. 취지를 분명히 알자 나를 드러내는 하나의 수단에서 한 여성으로서의 목소리를 내는 자리에 대한 막중한 책임감이 느껴졌다.

연년생 남동생 덕분에 나는 어릴 적부터 여자라는 이유로 제한되는 모든 것에 반기를 들었다. 부모님은 딸을 보호 하려 해도 “동생은 되면서 난 왜 안되는데?”라며 동생이 하는 건 다 하곤했다. 성평등이라는 말을 배우기도 전에 나는 남동생과 동등해야 한다고 믿었고 맏딸이기에 때로는 동생을 보호하고 이끌어야 하는 존재로 공주보다는 장군에 가까웠다. 내가 존경하는 셰릴 샌드버그의 일화 중, 셰릴의 동생들이 “우리는 셰릴의 동생이 아니라 셰릴의 첫 번째 직원이었다”라고 언급한 내용과 마찬가지로 나 역시 동생에게 조신하기보다는 억척스럽고 드센 누나였다.

얼마 전, 이사하면서 남자후배에게 책상을 주기로 했다. 기역자 책상을 나사로 분리해서 들고 가기는 편해도 차 없는 동생이 0.6마일을 가기엔 역부족이였다. 한 사람의 손이 귀한 상황이니 고민없이 같이 들고 가는데, 뒤에서 따라오던 엄마는 주는 마당에 배달까지 해주는 딸이 고생하는 것 같아 자꾸만 한숨을 내쉰다. 유리책상이라 꽤 무거운 것을 들고 한참을 걸으니 엄마 마음이 이해가 되면서 도와 주는 게 당연하다 여겼다. 옮기고 돌아오는 길, “엄마, 내가 그 동생 상황이 될 수도 있잖아”라고 말하자 “그땐 당연히 남자가 도와줘야지. 너는 여자니까 약하지만 남자는 강하니까 혼자 세 번 왔다갔다 하면 되지!”라는 말에 나도 그만 껄껄 웃어 버렸다.

나는 페미니스트가 아니다. 여성차별, 남녀평등이라는 말도 내겐 너무 낯설고 어렵게만 느껴진다. 그러나 여자라는 이유로 배려와 보호가 당연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성차별은 외부가 아닌 “여자라서” 누리는 배려를 당연시하는 무의식에 있는게 아닐까. 어쩌면 “여자라도”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하는 난 “의도치 않은 페미니스트”일지도 모른다. 이 글의 제목은 한 여성의 바람(hope)이기도 하며 여성의 창(window)에 영향력이 미칠 수 있는 바람(wind)이 불어오길 바라는 이중적인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