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창] 강성희 l 은발 다된 그날에
2015-06-02 (화) 12:00:00
“정말 무서운 건 세월입니다.” 구순을 바라보는 대한민국의 석학 김동길 박사의 고백이다. 그분은 강연 도중 늘 아름다운 시를 낭송하는 문학소년 같은 분이셨다. 세월의 뒤안길에서 그분이 묻는다. “세월 앞에 힘 센 사람이 누구입니까?”
오늘 남편이 60세가 되었다. 환갑이 된 것이다. 본인도 놀라 묻는다. “내가 언제 이렇게 나이를 먹었나?” 청운의 꿈을 품고 역사학자가 되기위해 유학을 왔다. 고국에 돌아가서 왜곡된 역사를 바로 잡길 원해서 유학왔던 청년이 미국에 살고있는 교포, 목사의 딸인 나를 만나 결혼을 하고 이민자가 되어 환갑을 맞이한 것이다. 늘 고국을 그리워하고 미국에 낮설어하면서 살아간지 33년. 오늘 교회에서 사랑의 음식을 나누며 많은 축복을 받았지만 아직 실감나지 않는 눈치였다. 어려서 많게만 여겨졌던 60대의 문으로 달려 들어가는 느낌이리라.
결혼 후 유학생 시절 딸을 낳았는데 딸이 크게 아파 그로 인해 진로가 바뀌었다. 이제 26살이 되어버린 건강해진 딸 수정이와 착하기 한량없는 22세 아들 인모. 우리에게 허락해주신 열매들이다. 30년을 같이 살아온 인생의 반려자로서 그를 축복하며 테이블에 마주앉아 같이 지난날을 되새겨 보았다. 정확히 10년 전 봄, 남편은 50도 채 되지 않은 나이에 간암 판정을 받았다. 단숨에 달려온 지난 10년, 덤으로 살아온 세월이었다. 수술도 없이 치유해주신 창조주께 우리가 드릴 열매가 있는지 생각해본다. “모든게 은혜이고 감사였다”고 남편은 고백한다.
남편이 새롭게 겪기 시작한 아직은 희망있는 60대, 곧 나에게도 시작되겠지만 나는 이런 고백을 드리길 원한다.“오늘도 새 날주셨으니 새로운 사랑의 세레나데를 부르겠습니다.”
‘젊은 날의 추억들은 한갓 헛된 꿈이랴/ 윤기 흐르던 머리 이제 자취 없어라/ 오- 내 사랑하는 님, 내 님 그대 사랑 변찮아/ 지난날을 더듬어 은발 내게 남으리/ 은발 다된 그날에 그대 앞에 말없이 고운 장미 꺾어서 깊은 축복 드리리/ 오- 내 사랑하는 님, 내 님 그대 사랑 변찮아/ 보금자리 꾸민 날 깊은 안식 있으리.’
이제는 더 이상 설명하지 않아도 서로 이해하고 닮아가는 60세의 나이. 정원에 피어있는 붉은 장미 꺾어 그대 앞에 드리며 은발의 찬란한 영광을 노래하리라. 그리고 이 고백도 놓지않으리라. “주여 나를 도우사 세월 허송 않고서 어둔 세상 지낼 때 햇빛 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