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여성의창] 변소연 l 이별은 유학생의 필수조건

2015-05-22 (금) 12:00:00
크게 작게
하룻밤 사이 버클리 길목에는 자동차가 빼곡히 들어찼다. 바람이 꽤나 쌀쌀했지만 졸업식을 보러 전세계에서 몰려든 사람들의 열기 때문인지 이상하게 춥지 않았다. 캠퍼스에 들어서자 여기저기서 잔뜩 흥분한 얼굴로 꽃다발을 들고 사진을 찍고 있는 친구들이 보였다. 다들 지금 그 자리에 서기까지 길고도 짧은 여정에서 참 많이도 울고 웃었을 것이다. 나 또한 이곳에서의 모든 것이 처음이었고 그 속에서 수만 가지의 감정들을 느끼고 익혔던 것처럼. 똑같은 장소에서 똑같은 가운을 입고 졸업의 기쁨을 만끽하던 때로부터 벌써 반 년이 지났다. 졸업 후 시간이 더 빨리 흘러간 것 같진 않았다. 다만 학교라는 울타리를 벗어난 이후 나는 새로운 도전과 경험을 했고 지금의 나는 졸업모자를 쓴 그때의 나와는 분명 많이 달라져 있다.

이번 학기를 끝으로 친하게 지냈던 친구들이 대거 졸업을 했다. 대부분의 친구들은 바로 한국으로 떠나고 소수만이 남아 미국에서 취업 준비를 강행한다. 떠나는 친구들에게 섭섭한 감정이 들면서도 미국에서의 삶이 녹록지 않기에 나는 그들의 선택을 십분 존중한다. 모두들 손꼽아 기다려온 졸업식이겠지만, 그래도 나로선 이렇게 헤어지는 것이 갑작스럽고 아쉬울 뿐이다.

가족들과 점심 약속이 있는 졸업생 친구들을 뒤로하고 이미 졸업하고 취업한 친구들끼리 식당에 갔다. 자리에 앉자마자 누구나 할 거 없이 취업비자에 대해 고충을 쏟아낸다. 유학생이라는 이유만으로 면접에서 수없이 거절도 당해봤고 끝없는 자기와의 싸움을 견뎌낸 대견한 친구들이다. 그렇지만 결국 일 년도 채 안되어 또다시 신분 때문에 마음 졸이며 살고 있는 모습이 안타깝고 속상했다. 몇 달 후에는 떠날 사람과 남겨질 사람이 결정될 것이고, 그렇게 또 다른 이별이 준비되어 있다.

며칠 전 친구 한 명이 내가 고등학교 졸업식 때 동기들에게 선물한 영상편지를 SNS에 올렸다. 그때에 비하면 나는 이별에 많이 둔해진 듯싶었는데, 친구들과 헤어져 집에 돌아오니 또다시 가슴에 크고 깊은 구멍이 생긴 것처럼 한없이 허전했다. 평소 같았으면 허전함이 가실 때까지 앓는 소리 했겠지만 이번엔 현재에 집중해보기로 했다. 지금 나에게 주어진 것들을 하나씩 떠올려보니 텅 비었던 가슴속이 조금씩 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비록 아쉬움의 농도는 그대로지만 회복하는 방법을 터득하고 있는 듯싶어 그나마 다행이라고 스스로를 위로하며 또 한번 고비를 넘겼다.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